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본성, 그러니까 자신이 남성인지 아니면 여성인지에 대한 인식을 언제 하게 되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물론 나는 내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인지를 한 적도 없었고 구태여 생각해본 적도 없이 당연히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나의 성이라는 것에서 추어도 의심을 해본적이 없었지만, 이 책 안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후천적인 선택에 의해서, 그것도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부모님의 선택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했던 브렌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동안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지하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한 문제에 대해 엄마에게 여쭤보아도 그녀 역시도 확실한 답을 들려주지는 못했다. 아무렴, 자신이 낳은 딸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고 머리를 따주며 예쁘게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한 나를 보며 엄마는 본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너무도 까탈스러운 성격때문에 고민을 하셨다는 것을 보노라면 브렌다, 그녀 아니 그의 부모와는 첨예하게 다른 상황이었던 엄마와 그들 안에서 답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인지를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본성에 대해서 인위적으로 거스르게 될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보고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브루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사람은 론과 재닛이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끔찍한 사고의 흔적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도 론과 재닛이었다. 재닛은 아들과 딸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당시에는 뭘 몰라서 여자들 성격이 훨씬 부드럽닥 생각했어요. 착각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들이 더 사납고 요란하고 터프하더라고요. 하지만 당시에는 상처도 있고 하니까 브루스를 딸로 얌전히 키우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남자들은 이것저것 겪어야 하는 게 만잖아요." -본문
자신이 원래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사고로 인해서 여성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브렌다로서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짜증스러운 것들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자신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지만 여자처럼 조신하게 지내야 했고 치마를 입어야 했으며 인형을 가지고 놀며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총과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아이들과 주먹다툼을 하고 거칠게 노는 것을 즐기던 브렌다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그어디에도 낄 수 없는 중성도 아닌 제 3의 성을 가진 외톨이로서 늘 외면당하며 지내는 시간들을 견뎌야만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가족들의 고통은 물론, 그들의 고통스런 시간들을 마주해보고 있었던 머니 박사는 브렌다의 무언가 비뚤어진 행동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변모될 것이며 여자로서 제 2차 성징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수술 및 호르몬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 문제는 그가 브렌다 및 그의 가족들을 환자가 아닌 자신의 연구 목적을 위한 데이터로만 바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브렌다의 부모가 없을 때 머니 박사가 브렌다와 브라이언에게 한 추악한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가 의사가 맞는 것인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모든 것들을 그에 끼워 맞추려 하는 그야말로 마리오네트로서 한 가족을 이십여년 동안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당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화가 나기도 했고,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크게 느껴진 감정은 따로 있었다. "마음이 놓였어요. 그제서야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된 듯한 심정이었어요. 난 돌연변이가 아니었어요. 미친 것도 아니었고요."
브렌다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었다. 온전한 모습으로 살았던 유일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생후 8개월이라는 짧고 매혹적이었던 시기에 대한 것이었다.
"제 이름이 뭐였나요?"-본문
어찌되었건 브렌다의 이름으로 살았던 데이비드는 자신의 생의 기록이 너무도 성공적인 임상 사례로 알려지고 있어 매년 발생하고 있는 성전환 수술을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자신과 같이 고통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밝힌다는 그의 이야기가 애잔하면서도 그 용기에 대해 끊없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이상한 건 세상이지 내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았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가 아닌 또 다른 용서와 베품을 보여주는 그를 보며 잃어버린 그의 20여년 동안의 삶을 이제라도 그 누구보다 만끽하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