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다른 두 개의 삶이 평행선처럼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둘이 교차되는 지점도 있지만 거즌 대부분은 각자의 빛을 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섯 살 이후 지금까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루리코와 모에는 함께하고 있지만 과연 그 둘이 친구가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정 반대의 사람에게 끌린 다는 이성의 법칙이 친구에게도 통하는 것일까?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그렇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면서 나는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르다, 라는 초반의 생각들과는 다르게 그녀들의 삶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20대 초반에 이야기를 보았다면 루리코에 대해서 때 아닌 원망을 퍼부었겠지만, 어느 순간 루리코의 이야기도 그저 가슴에 잔잔히 묻히고 있었으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흑백논리로만 가득했던 세상에 회색조의 영역이 점점 넓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명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 루리코는 얼마 전 두 번째 결혼의 종지부를 찍고 이제 다시 세 번째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여자의 외모는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능력이라 생각하는 그녀는 부지런히도 자신을 가꾸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자들 사이에 있어서는 남자에게 빌붙어 사는 여자 정도로 치부되고 있지만 정작 그녀 스스로는 그러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이혼이라는 낙인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세 번째 결혼이 기다리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당당함을 드러내는 그녀는, 처음 그녀를 보았더라면 밉상이다, 라고 생각했겠지만 보면 볼수록 그녀 만의 시원스러움에 빠져들게 된다.
루리코는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된 셈인지 모에는 남자 운이 별로 없다. 좀처럼 연애에 빠지지 않는 모에 자신의 성격 탓도 있지만, 겨우겨우 그럴 마음이 생겼나 싶으면 뜻하지 않은 문제에 휘말린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키자키의 이혼은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모에 역시 제대로 상대할 남자가 간신히 나타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문
그리고 그녀의 친구 모에. 모에는 첫 사랑의 아픔 이후에 그 누군가가 다가오려 하면 몇 십 번이고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 간극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서는 홀로 서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남자는 물론 어느 순간 그녀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어 버린 그녀를 보노라면 루리코와는 너무 다른 성향의 모습이기에 때론 답답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토록 겁을 낼 필요가 없는데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올 상처를 방어하고자 그 모든 가능성을 닫고 있는 것이다.
원래 노부유키는 모에와 사귀는 남자였다. 그래서 믿고, 열심히 마음을 돌려서 결혼까지 밀고 갔는데 그런데 뭐라고? 저런 애송이한테 바보 취급 당하는 남자였다. 그렇다면 모에가 차 버린 물건을 낚은 것이나 다름 없이 않은가.
루리코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접시 위에서 시폰 케이크가 확 뒤집어졌다.
물론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모에를 찾아 항의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본문
두 명의 여자를 전제로 하여 보여주는 이 소설 속에는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한 남자를 공유하며, 심지어 모에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을 루리코는 결혼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서도 그들은 다투거나 하는 모습이 없다. 그저 친구의 남자였다는 것에서 오히려 위안을 느끼고 이미 검증을 받은 사람이기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어찌 보면 그들의 논리가 맞는 것일 수도 있으나 현재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어찌되었건 그들의 상태가 한 명은 여전히 남자에 의존하며 사는 모습이고 한 명은 혼자만의 섬에 갇혀 사는 것이라면 별다른 감흥 없이 끝나버렸을 것이다.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닌 결혼을 믿는 여자인 루리코는 다카시의 직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이뤄질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혼이 아닌 사랑의 의미를 이제서야 찾아가게 된다. 모에 또한 다카시와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녀 삶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깨달아 가게 되는데 미성년자였던 다카시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고 자신은 아이와 함께 현재의 자리를 지키며 행복을 찾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모에처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너무도 다른 둘의 이야기를 마주하면 할수록 무언가 아슬아슬하면서도 또 그 안에서 점점 정착을 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들의 삶이 틀렸어, 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매 순간 그녀들 스스로도 최선의 선택을 다 해온 것일 테니 그녀들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또 변해갈지.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그 안에서 마주하면서 비로소 끄덕이고 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