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는 동안에 ‘아직 세상은 따스하구나’ 라는 생각만을 계속하며 이 책을 넘겨 보았다. 휴가 기간 동안에 읽은 터라 심적으로 편한 것도 있었겠지만 나를 감싸고 있던 공기들보다도 이 안에 담겨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강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파동 같은 따스함은 읽는 내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일 들려오는 사건 사고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삭막함을 넘어 미쳐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 마주한 이 책은 나에게 아직 세상에 온기는 남아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반증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푸근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아이고, 커튼을 계속 잡고 있었더니 팔이 아파죽겠네.”하며 활짝 웃으시는게 아닌가. 영주에서 안동까지 한 시간도 더 넘게 오는 동안 계속 졸기만 했던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내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을 커튼으로 내내 가려준 줄 알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고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모르는 옆 사람의 얼굴에 내리비치는 햇빛을 커튼으로 내내 가려주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본문
처음 마주한 누군가를 위해서 선뜻 저녁을 먹고 가라며 자리를 내어주시고 정신 없이 잠들어 있는 저자에게 따사로운 햇살이 비칠까 팔이 한 시간 가량 커튼을 잡고 계신 아주머니는 그저 함박웃음으로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해서만 전해주고 계신다. 살아남기 위해서 바둥거려야 하는 요즘에 흘러가는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준 적이나 있었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이 잘못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시비가 붙는 삭막하기 그지 없는 지금의 시대에 이러한 훈훈함이 남아 있다니. 그가 마주한 이 분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을 시작으로 그럼에도, 아직은! 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을 표현해야만 사랑이라, 생각하는 우리 세대의 사랑과는 다르게 이전의 어르신들의 사랑은 묵직한 느낌들이었다. 구태여 표현하지 않아도 그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깊은 그 분들의 사랑은 저자의 외할머니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저 “호승이 니 왔나?”라는 말 이외에 별 다른 말씀도 없으셨다는 그의 할머니는 새벽녘에 찬 공기를 맞으면서도 손자들이 자는 방이 차가워질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셨다. 이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는데 여름 방학이면 내려가곤 했던 시골에서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고구마를 캐다가 구워주시는 것은 물론 밭일을 돕는다며 나간 고추 밭에서 뿌리 채 몽땅 뽑아버리는 손녀를 보면서도 말 없이 그저 수고했다며 리어카를 태워주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모든 몸짓에는 그 어느 말보다도 깊은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한참을 지난 후에야 알았으니, 그 당시 조금 더 살갑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에야 후회로 밀려든다.
사람들은 왜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말없이 전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의 언어를 저 순백한 천상의 언어로 대신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 땅에 첫눈이 오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첫눈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
모든 아이들이 시인이었지만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현실 속에서 점차 그 영롱함을 잃고 있는 아이들이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그는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이토록 따사로운 시선을 들려주고 있다. 모두에게 내려지는 축복에 대해서 그는 그가 기다렸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첫눈에 대한 두근거림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가 담아 놓은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푸근한 마음에 지금 내가 있는 긴박하게 보내야 하는 하루들이 모두 사그라 들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만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다. 매일 여기저기 치여 사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던 나에게 잠시 휴식을 전해주며 세상의 온기를 전해준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