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고 있는 한 배에 남아있던 사람들. 남극이라는 극한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
자체가 한정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식량은 점차 떨어져가고 마실 물조차도
없다. 과연 이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모해갈 것인가.
검은
물속에서 본 정섭의 말간 얼굴은 처음 배가 출발하던, 푸른 하늘 아래 그 모습처럼 보였다. 정섭은 그저 겁게 질려 있었던 것은 아닐가. 그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은 아닐까. -본문
때는 일제치하 시대였다. 그 때 우리의
선조들은 그 무엇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명령이라는 이름 하에 일본인들이 휘두르는 총칼에
이유없이 죽어 나가야 했으니 한 명이라도 자신의 식구를 살려야겠다는 명분으로 오른 배가 바로 일본군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으며 그렇게
고기 잡이를 하러 가는 동안 수 없이 그들의 몸을 향해 날라오던 폭력과 폭언은 고스란히 삭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조선인들은 그 밤, 일본인 선원들을
하나하나, 배의 외진 곳으로 불러냈다. 해부장은 등과 배에
칼이 꽂힌 채 끝까지 저항했다. 배에 꽂혔던 칼자루를 뽑아 조선인들에게 휘두르던 그의 모습은 마치
수라와 같았다. (중략) 그는 구슬픈 오래전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담담하게 끌려나왔고 눈을 감은 채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선실이 비어가는 동안 밤바다는 거칠게 요동치며 살인의 증거를 검은 수면 아래로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본문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인들에게 했던 모습들은 다시 대만인과 필리핀인에게 고스란히
하는 모습에서 폭력의 답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한 인간이 한 인간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소유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끔찍한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 모든 것들을 누구에게
탓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또렷하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빠르게,
그야말로 이 이야기 속에 흡입해서 읽어내려갔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의 결말들에 대해서,
아니 이 모든 과정들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광기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조금 더 곱씹어 봐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