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다독이는 방법은 같이 여행을 떠나 시간을 보낸다거나 술 한잔 기울이며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준다거나 혹은 같이 울고 아파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있을테고 때론 조용히 그저 그 곁을 지켜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주는 것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지막히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사람의 마음을 따스히 감싸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수 많은 수식어를 앞세워 회황찬란하게 꾸미지 않아도 덤덤한 듯한 이야기들이 사람의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으로 그렇게 일상 속의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솜이불을 틀기 위해 목화솜 한 송이씩을 받은 느낌이다.
스웨터가 따뜻한 이유는 털실 사이에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란 '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털실과 털실 사이의 공간이 따스함을 품는 것처럼.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람이라는 글자로 충분한데 '사이'라는 뜻을 가진 間'자는 왜 붙었을가? 어쩌면 '사이'라는 말이 삶의 비밀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 본문
사람간에 믿음이나 의리, 사랑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미움이나 질투, 시기, 배신이나 아픔을 받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란 아마도 그 적당한 선이 어느 즈음인지를 모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픔을 주기 마련일텐데 스웨터와 같이 일정한 공간이라는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겠지만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그 순간, 그 누구도 그 적정 간격을 모르기에 매번 어렵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적당히라는 간극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품고 있으라 전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둘의 사이는 충분히 따스해진다고 말이다.
여름이 되면서부터 향기에 대해 민감해지게 되는것 같다. 특히나 출퇴근길의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의도하지 않게 사방의 사람들과 밀착을 하게 되는 그 순간,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냄새라든가 찐득한 땀냄새를 맡게 되면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지게 되는데 그 순간만큼은 이 곳을 빨리 벗어나 신선한 공기만을 쐬고 싶은 바람뿐이다. 나쁜 냄새보다는 좋은 냄새를, 달콤하면서도 좋은 향기를 쫓는 것이 사람의 당연한 바람일 텐데 유자를 캐는 분들은 자신들의 곁에 있는 유자향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유자의 향을 잘 모르신다고 한다.

유자 밭에서 일하는 분들을 취재한 뉴스가 있었다. 명량한 목소리로 리포터가 물었다. "향기 좋은 곳에서 일하시니 좋으시겠어요." 이랗는 분들은 여전히 유자를 따는 일에 몰두한 채 대답한다. "우리는 향기 같은 건 몰라."
향기란 여유롭게 누리는 사람들의 몫이다. 유자의 향기가 그 밭에 퍼져 있다 하더라도 추운 ㅏ날씨 속에서 오늘 얼마나 많은 유자를 따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유자 향기란 먼 나라 이야기다. - 본문
좋은 향기에 대한 나의 막연한 바람들은 이 부분들을 읽으며 송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알싸한 땀내음은 그들 자신의 삶을 위하여, 또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품어 낸 노동의 잔재이자 삶의 응축이었음을 모른 채 그저 코끝에 스치는 냄새만으로 고개를 돌렸던 내가 떠올랐으니, 아직 한참 어리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네 삶속에서 지나치고 있었던 소소한 것들이 나에게 다가와 천천히 스며드는 것 같다. 강렬한 조미료나 향은 아니지만 잔잔하니 소담스러운 맛을 내는 이 이야기들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 수록 이 안에 담긴 이야기들에 깊이 매료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