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혼자 다녔는지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든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기에 평범한 하루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들에 대해서 별 달리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가끔 책을 보거나 아니면 쏟아지는 잠에 취해서 원래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 내리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부단히 연습을 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습득된 지식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빗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타인들의 일상이 그에게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배워나가야만 하는 일들이다.
물론 데이빗을 길거리에서 마주했더라면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보고서는 그에게 눈길이 먼저 갔을 것이다. 그가 자폐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에게 매료되겠지만 그가 앓고 있는 자폐를 알게 된 이후 아마도 나는 그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폐를 앓고 있는 그에 대한 두려움 등,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온정 어린 시선과 더불어 냉담함이 쏟아지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를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폐에 대해 편견과 오해는 물론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의 삶까지도 투영하여 마주할 수 있는 책으로 막연하게 아픔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놓는다거나 혹은 어두운 면만 조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그들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먼저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가 단순히 한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이 이야기는 가족 전체에 관한 이야기다. 세 아들들을 키우며 보낸 지난 사반세기를 돌이켜 보니, 나와 남편은 자폐증이 무엇인가 그리고 자폐증이 한 가족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라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에 사로잡힌 채, 해답을 찾아 길고 긴 어둠 속을 체매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한 이야기다. –본문
자신 만의 세상에 갇혀 주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아이가 바로 데이빗이었다.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그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러니까 데이빗은 ‘현재만 사는 아이’이다. 그에게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아닌 오직 지금이라는 순간에만 살고 있고 그는 그 순간순간에 집중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그 세계에 갇혀 그 자리에 늘 머물러 있지만 사람들을 하나 둘 씩 내일을 향해 전진하고 있기에, 늘 그 자리에 있는 데이빗은 도태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늘 그 곳에 서 있는 것뿐인데 주변은 번잡스럽게 변화해 가고 있기에 그는 가만히 있어도 뒤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데이빗고 투표를 하나요?”
그녀가 데이빗을 향해 고갯짓을 하며 우리에게 물었다.
“네” 브루스가 그녀를 쏘아보며 말한다. “그래서 여기 서 있는 거예요.” 그녀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며 조그맣게 피식 웃는다. 데이빗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벌일 때마다 사람들의 훌륭한 면과 저질스러운 면을 보게 되는 듯하다. –본문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은 부모로 하여금 모든 이들에게 죄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고 있다. 그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뿐인데 세상은 그 아이를 향해서 틀리고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데이빗의 부모 역시도 언제나 그가 혹여나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까지 데이빗의 부모의 일과는 오로지 데이빗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데이빗의 형제들에게는 신경을 쓸 여력조차 없었기에 부모 자식간이지만 서먹해지는 관계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가족이라는 내분보다는 세상이 쏟아내는 눈짓을 막는 것이 급급했으니 말이다.
아들과 영화를 보러 가서도 어떠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없기에 서글펐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홀로 사라져버린 데이빗을 찾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순간 “내 아들을 저능아예요” 라며 하고 싶지 않던 고백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자아낸다. 그들 역시 장애를 가진 다른 부모와 같이 데이빗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 목표였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데이빗은 조금씩 사회 속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온 몸으로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느린 거예요.’를 보여주듯 말이다.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데이빗이 아니라. 떠나가는 전철을 바라보며 나는 통로 한복판에 서있는 젊은이를 마지막으로 흘깃 바라본다. 홀로 자신에게 집중하며 서 있는 그는 이 세계에서 자신이 깃들 자리를 찾아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다. –본문
이 책을 읽으면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건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있듯 편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왔으니 말이다. 여전히 장애라는 편견을 가지고 오늘을 지내고 있는 우리가 다음 정거장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