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한설 지음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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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여자나이 25살이 지나면 일명 꺾이는 나이라며 케이크 값이 떨어지는 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저 웃기만 했었다. 20대 초반에는 나에게 스물 아홉을 넘어 서른이라는 나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고 만약 그 나이가 된다면 사회에서 인정 받고 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 도란도란 살고 있는 모습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다. 

그때 민재에게, 서른이라고 하면 막막했다. 그래도 윤곽은 갖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세련된 여성 팀장 정도, 집에선 착실한 주부, 아담한 아파트와 중형 자동차 한 대, 서른쯤이면 그런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벌써 스물아홉 언저리, 여중생 때 백마녀처럼 서른이 되지 않을 거야, 라며 바랐던 것 가운데 무엇 하나 이뤄낸 것이 없다. –본문 

어느덧 스물 여덟이 되었을 때만 해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시간은 많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스물 아홉을 넘어서자마자 주변의 지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씩 결혼의 대열에 들어서는 이들을 보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29살이 됐던 그 해 3월부터는 그야말로 히스테리의 절정이었던 것 같다. 청첩장이 날아드는 것만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9+1=30이건만. 그 때의 나에게 스물 아홉과 서른은 한 백 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고 그 기한 내에 결혼을 하지 못하면 마치 죽음을 선고 받는 것과 같이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일을 싱긋 웃으며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라 받아들였었는데 스물 아홉 살의 휘청거리던 내가 바로 이 소설 <스물 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스물 아홉의 그때에 이 책을 마주했더라면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내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는 이러한 책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늦어도 괜찮아라며 이미 결혼한 지인들이 이야기 해주는 위로는 표면 위에서 둥둥 떠다니고만 있었기에, 조금만 더 일찍 세상에 나타났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때를 떠올리며 쉼 없이 읽어 내려 갔다.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정인은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자기 계발부서로 이동까지 하게 된다. 백마녀에 이어 편집장 장마녀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고 글을 써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자유분방한 민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다. 직접 피켓시위에 나서기도 하고 훤칠한 키에 패션에도 관심이 많기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스타일이다. 아직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는 그녀는 선 시장에 나가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계속된 지원을 받고 있다.

탕웨이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모이는 MJ 클럽 중 유일한 유부녀인 효선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혼 생활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부잣집 시댁을 둔 그녀는 명품가방과 피부과 마사지를 받는 일상을 즐기고 있는 듯 하지만 그녀의 여유로움 뒤에는 목을 졸라오는 친정 엄마가 있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수정은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다. 고여있는 것보다는 자유로움이 좋기도 하고 대본을 쓰기 위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정규직보다는 아르바이트가 제격이라 생각하기에 이 생활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그녀를 조여오는 경제적인 압박은 친구들 사이에서 말못하는 컴플렉스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담고 있는 그녀는 형식 선배와의 드라마 작업을 통해서 조금씩 그녀가 그리는 빛의 세계가 드리울 참이다.

 열 아홉살을 지나 스무살을 들어설때 그녀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었다면 스물아홉에서 서른의 문턱에 있는 그녀들은 아슬아슬하고 두려움은 물론 패배자로 전락해 버릴 듯한 모습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무살이 되자마다 성년의 날이라며 축하가 쏟아지지만 서른이 되는 그녀들에게는 사회의 무거운 눈길만이 그녀들을 향하고 있으니 사회가 원하는 그 선상에 다다르지 못했을 경우, 그러니까 누가 보아도 안락한 결혼 생활을 한다거나 사회적인 성공을 했다거나 하는, 이른바 그녀들이 20대에 당연히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이 아닌 그저 20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자신을 보았을 때, 남들과 다르게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뭔가를 이룰 것도 아니면서 별로 잘하는 것도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중이다. 딱히 도전해 보고 싶은 일도 없다. 가끔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혼자서만 도태되는 느낌이 든다. 불안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느낌이다.  본문 

 그녀들이 스물 아홉을 넘어 서른으로 도래했듯이, 사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웃으며 돌이켜 볼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지금까지 달려온 길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위안을 그녀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흔들리는 스물 아홉의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그리고 나 혼자만이 이 마라톤에서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하고 있다면 이 책을 조용히 전해주고 싶다. 스물 아홉과 서른은 1년이 아닌 백년의 시간처럼 어마어마한 장벽과 같은 차이가 느껴지던 것이 그저 어제를 넘어 오늘이 되고 내일을 달리게 하는 위안을 전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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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이름으로 1, 2 / 엘리자베스 길버트저


 

 

독서 기간 : 2014.07.02~07.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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