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표지와 제목을 보고서는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일까, 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인지 남자일지 모른 사람이 사자머리를 하고서는 <불새 여인이 죽기 전까지 웃겨줄 생각이야> 라는 이야기를 외치는 이 사람을 보며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고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불새 여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며 그런 그녀를 웃겨준다니. 뭔가 아련한 듯 하면서도 과연 이 사자 탈을 쓰고서는 불새 여인을 웃게 만드는 비장의 술책이란 말인가, 라며 이런 저런 머리를 굴려가며 궁금증을 안고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응급실 인턴인 주인공이 인턴 생활 중의 일주일 동안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사자 머리를 한 사람은 바로 27살의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본인이며 그가 환자들과 동료들 틈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전해준 것으로 ‘불새 여인’은 그가 만난 4층의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 암 환자이다. 그야말로 오늘 내일하며 세상을 떠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투병 생활로 인해 머리가 다 빠져버리기 전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자머리의 주인공은 그를 ‘불새 여인’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불새 여인을 죽도록 웃겨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불새 여인이 자신의 생명이 다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불새 여인의 아들이 무사히 그녀의 앞에 나타날 때까지, 그녀의 삶을 연장시키겠다는, 한 의사로서의 사명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위해 그는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불새 여인에게 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그녀에게 웃음과 삶을 계속해서 퍼트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응급실의 천일야화나 다름 없는 이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단 일주일이라는 시간 속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응급실이라는 배경만으로 그곳은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웃음보다는 냉철함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들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그곳은 따스한 웃음이 있고 아련한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 당신 왔네!”
남편의 얼굴을 볼 수도, 그렇다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환자였다. 그런데 남편이 왔다는 걸 정확히 알아맞혔다. 존재 자체가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기쁘게 했던 것이다.
“당신이 왔어!” 할머니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아마 그날 아침 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한마디 말이었던 것 같다. –본문
에포닌 애탱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애잔해진다. 젊은이들은 발을 찧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가구가 이마를 향해 돌진해 온다는 저자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이 순간을 그가 마주했기에 그 아련한 마음을 지금의 내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서 감사할 따름이다. 암흑과 같은 그 시간 속에 오롯이 혼자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은 끈은 오랜 시간 그들이 함께 해오는 동안 오감을 뛰어넘어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고 그렇게 서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할머니의 마음을 치료해 주는 것은 할아버지의 존재였을 것이다.
언제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이다 보니 환자들의 대기는 계속해서 길어지기 마련이다. 응급실을 찾는 이들은 모두가 급하긴 매한가지겠지만 병의 정도에 따라서 진료를 받게 되는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는데, 먼저 왔음에도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짜증을 내는 환자에게 주인공은 그 상황에서도 환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관장을 하는 순간에도 그는 인간의 기나긴 관을 지나온 물질이며 이를 통해서 그는 또 하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 그날 자신이 한 의료행위중 가장 아름다운 의료행위였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가 만나는 의사들이 다 그와 같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자신의 손을 통해서 한 사람의 생명이 결정된다는 것은 늘 두려움이 가득한 일일 것이다. 그가 불새 여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죽음을 피해갈 수 없게 하듯, 그는 의사로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에게 실패란 한 사람의 생명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하루는 길고도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의 죽음은 우리 존재의 나약한 면을 보여지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중에서 의사야말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일 것이다. –본문
불새 여인에게 도래할 반전과도 같은 이야기를 넘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따스하면서도 때론 뭉클하게 다가온다. 손과 머리는 냉철하지만 따스한 가슴을 가진 그와 같은 의사들이 가득하기를, 그리하여 불새 여인과 같은 수많은 이들이 따스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