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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선생의 책을 언제 처음 봤는지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그 안의 내용들이 모두 따스히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집에도 그녀의 책 몇 권이 책장에 꼽혀 있다.
잊고 지내다가도 다시금 마주하게 되면 정신없이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이번 <다시, 봄>이라는 책을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사실 장영희 선생의 글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그저 표지 속의 그림을
보면서 무언가 새록새록하니 피어나는 새싹과 같은 느낌이라 손으로 그 질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이 책을
안고 펼쳐보니 나의 촉이 아직은 살아있구나,
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이제 책을 놓지 않으면 불안한 나날들을 느끼며 무엇이라도 읽으려는 습관을 들인지가
고작 1년 남짓이다. 그 동안에 겨우 소설이나, 에세이 등을 주로 하여 읽어왔으며
인문 분야도 조금씩 읽어보려 하고 있으나 그 와중에도 좀처럼 읽어내려가지 못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시'에 관한
책들이다.
학창시절부터 시, 하면 짧기는 하나 오히려 외워야 하는 것들이 많아 기피했었는데
음율이라든지 함축적 의미라든지에 대한 이야기로 빈틈없이 교과서를 빼곡히 채워야만 했던 기억들로 개인적으로 시와 장문의 글 중에 택하라면 장문의
글을 택할 정도였으니 개인적으로는 시와는 친해질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 속에 김영희 선생이 골라주신 이야기를 보게 되면 그것도 우리네 말로 원래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영시에 대해서 어느 새 깊이 빠져서 읽고 있는 나를 보노라면 그녀가 왜 이 시들을 손수 골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는지에
대해 어느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매월 시작하는 달마다 그녀는
짧은 이야기들로 서문을 시작하고 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는 하루의 차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1월의 의미부터 봄을 기다리게
하는 3월의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워'를 외치게 하는 6월과 또 한번의 생을 마감하고
다시금 긴 겨울을 준비하는
10월까지,
매 월을 열고 있는 그녀의 단문들은 그 뒤에 담겨 있을 이야기들에 벌써부터 설레게 된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 새색시가 시집와서 김장 서른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단에 서서 신입생 서른 번만 맞이하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노교수가
됩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갈수록 1년이 정말 눈
깜짝할 새 지나갑니다. (중략) 꽃
피는 아름다운 봄을 영원히 볼 수는 없을진대,
너무 늦게,
이제야 그걸 깨닫습니다.
문든 다가오는 봄 속에 내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올봄엔 정말 꼭 꽃구경 한번 나서 봐야겠습니다. -본문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새 달력을
받아놓고 1월의 첫번째 장을
보면서 올해에는 수 많은 것들을 이루고 또 열심히 해보리라는 결심을 하기 마련인데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새해는 어느 새 익숙해진 올해가
되어버리고 그렇게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는 듯 하지만 어느 새 뒤로 넘길 수 있는 달력의 장수가 얼마 남지 않아 버렸을 때, 올 한해는 무엇을 하며 이렇게 또
시간을 보내버린 것인가 하는 때 늦은 후회를 내뱉는 자신을 말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제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에는 달라져야지, 하는 생각들은 했었지만 여전히 같은
나를 보면서 또 한숨만 쉬고 있을 즈음에 그녀는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시간들이니 열심히 즐겨보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영시는 바라보지고 않고 한글로 번역되어 있는 것들만을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사전 어플을 켜놓고서
영시를 먼저 해석해놓고서 옆에 번역되어 있는 작품들을 읽어내려갔다.
수 많은 영시들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If I can.....>은 앞으로 도래할 나의 삶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이입시켜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주는 듯 했다.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 것인가에 대한 갈 곳을 잃은 목적 의식은
덜어내고서 진정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데 오롯이 나를 위해서도 짧기만 했던 시간들을 놓아두고 조금 더
깊이 이 책과 함께 나를 돌이켜 보게 하는 시였다.
나와는 더 이상 관련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시가 그녀의 이야기와 버무려 어느새 나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내 안에도 이제는 하나의 씨앗이 싹틀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녀가 들려주는 영시와 삶의 의미는 한정되어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른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주춧돌이 되기에 충분하기에 이 책을 마주함에 있어서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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