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결코 긍정의 대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는 각인이 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요새 종종 전해지는 판결의 결과들을 보면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누구의 편인가에 대해서 되물어 보게 되면서 그들은 우리의 편이 아닌 그들만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한 개별적 존재의 자유와 생사까지도 좌우하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는 인간이 벼랑 끝에서 만나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각인 효과의 정점에 서 있는 직업이다. 판관들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철석같이 믿어도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인데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속설이 실제의 법보다 더 강력하다고 느낀다면 어째야 하는가. 벼랑 끝에서 내가 필사적으로 움켜쥔 생명줄이, 썩은 동아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상상을 현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상상들이 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이라서 판관들에 대한 신뢰의 색은 바래지고 마음은 더없이 무거운 상태였다. –본문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그들이기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 앞에 서면 움츠러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사는 동안 그들을 마주하지 않는 일이 좋겠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나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법정에 서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며 그런 순간 나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판사의 앞에 선다면 모두가 그에게서 좋은 결론을 얻어내길 바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재판장 안에서 가장 높은 피라미드의 위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움츠려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판사라는 위치에 있는 그는 생각보다는 우리와 가깝게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그 거리감에 대한 장벽을 스스로 허물어 자신의 섣부른 말 실수 등에 대해서도 재판장 안에서 먼저 미안하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판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가진 사람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가 하는 일이 판결을 내리는 판사일 뿐이라는 마인드를 안고 있기에 그들에 대해 나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 틀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파산 면책에 대한 제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통렬한 내용들이었다. 나의 부모님들도 당신들의 노후에 대한 대책보다도 마지막까지 사실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았던 그 비용들을 갚기 위해서 매달 고군분투하시는 모습들이 애잔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매일을 열심히 사시는 이들도 있는 반면 하루아침에 빚이 면책이 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들으며 과연 이러한 제도가 있다면 그 누가 열심히 빚을 갚으려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서는 넘긴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그저 이 제도의 겉면만을 그대로 바라보고서는 대체 이 제도가 왜 생겼는지 어떠한 취지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아니꼽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용불량자 400만이 어떻고 하며 쉽게 숫자로 이야기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은 숫자가 아닌 피가 흐르는 사람이고, 가정이 있고, 부모형제가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400만 명이 신용불량자라면 최소한 400만 가정이 빚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며, 그 중 상당수의 가정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아이들이 가정의 모호를 받지 못한 채 거친 세상에 던져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그들이 냉혈한과 같은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 더 냉혹한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수의 약자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트랜스젠더들의 인권에 대해 법적인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피의자들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의 시간들을 갖는 모습이나 그 누구도 하지 않던 비행청소년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하는 것도 그들이었고 본드를 흡입하는 아이들을 방지하고자 직접 발로 뛰어 납품을 말아달라고 뛰어다니는 그들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범죄가 피해자에 미치는 고통에 대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자에 대한 징역 1년이 엄한 벌인지 아닌지 역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물며 판사로서의 징역 1년의 무게도 함부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전체를 100이라는 숫자로 표현 할 수 있다면 나는 고작 1~2를 보고서는 그 100을 안다는 듯이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들이었는지에 대해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느끼게 된다.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사건에서 법리적인 이유로 일반 상식과는 다소 다를 수 있는 결론이 선고될 경우, 법이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지 말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생각이 들 만큼 친절하게, 표현도 심사숙고하여 왜 그럴 수 밖게 없는지 잘 설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 대한 오해인데, 언론이나 대중들이 법에 무지하여 오해한다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먼저 오해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판결문의 독자를 상급심 법원이나 변호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반 국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설득하려는 자세로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문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 상의 거리 속에 있을 것만 같은 그들에 대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더 따스한 온정을 느끼며 그들 역시 우리의 사회 속에 함께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과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이 사회를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들에서 안도감과 함께 이유 없이 그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녹여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과 그들을 진실로 믿기에 기대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찌되었건 함께 공존하는 시스템 속에서 공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을 갖기 이전에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고 어떠한 생각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매끄럽게 굴러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그저 넘을 수 없는 턱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를 통해 그들에 대해 가까워진 지금, 아직 세상은 따스한 곳이라는 사실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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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4.05.29~05.3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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