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쥘리 보니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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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의 제목 때문에 별안간 눈이 휘둥그레 지기도 했지만 표지 안의 여인을 보면서 무언가 신비로운 느낌에 매료되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과연 그녀가 안고 있는 이야기를 무엇일까. 무언가 비밀스러운것이 담겨 있을 쥘리 보니의 이야기는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녹여, 그러나 오롯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스'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뭐랄까, 이전에는 마주해 본적이 없는 생경함이었으나 그것은 낯설어 거부감이 든다기 보다는 새롭기에 호기심이 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페이지를 넘겨 베아트리스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게 하고 있었다.

 

 오로지 춤을 추는 것이 좋아서, 그것도 알몸으로 연주에 맞추어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어대던 그녀는 가보루와 파올로의 결테 있는 동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산부인과 간호 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노르마와 로메오의 엄마이자 이제는 떠나버린 가보루의 부인으로써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현실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춤을 추었고, 사랑을 나누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고, 내 남자는 행복했다. 나는 예술가로서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즉시, 안개처럼 쳥체가 사라지면서 황홀경에 빠져들곤 했다.
 
내가 가진 것은 벌거벗은 몸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모든게 어떻게 무너져 내렸느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그 사이 내겐 아이들이 생겼고, 가보르는 떠났다. 그러자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두려워지 않던 내가. 더불어 나의 몸도 침묵했다
.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간호사조무복을 입었다. -본문 

 

 이 책에서는 한 챕터마다 춤을 추며 그녀의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베아트리스와 엄마로서 그리고 삶을 위해서 간호 조무사로 일을 하고 있는 베아트리스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펼쳐지고 있다. 춤을 추며 행복을 꿈꾸던 베아트리스가 과거에서 현재로서의 삶으로의 시간순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간호 조무사로 일을 하고 있는 베아트리스의 일상을 매 순간 병실의 문을 열면서 새로운 산모아 아이들,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으며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삶처럼 매 순간 각방에 마주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또한 그 어느것 하나 평이하지 않고 특별한 그녀들의 살이 담겨져 있기에 어느 것 하나 파트릴 수 없이 진지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도 안한, 그렇다고 어느 누구 앞에서 춤을 추는 것조차 스스로 몸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엄마로서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는, 그것도 알몸으로 춤을 춰본 적은 더더욱이 없는 나로서는 사실 처음에는 '베아트리스'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초반의 그 근심은 기우였다는 것이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 수록 드러나게 된다. 

 

 2호실의 부인은 자신의 몸 안에 있을 때에는 살아있었던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도 같이 세상을 떠난 아이와 함께 떠나버리고 있었다.

 

 "아직 한 아이가 남았잖아요. 힘을 내세요." 라는 위로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 빠져보지 않는다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6호실의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나았던 산모는, 다분히 이 시대의 평범한 출산 과정 중에 하나인 제왕절개가 그녀 스스로의 삶도 조각내 버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이 평범하고 일상적이라며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두렵게만 느껴졌다. 어느 것 하나 쉬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매 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베아트리스를 마주하며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도 그 곳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병실 속의 여인들이 그저 한낱 에피소드 속의 주인공인것처럼 쉬이 말하는 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흘러나왔다. 그들에게는 잠시 시간을 떼울 수 있는 소재이겠지만 그 소재 속의 이들에게는 평생의 삶이 담긴 순간들일테니 말이다. 

 

 그녀의 옆에서는 남편이 말없이 울고 있다.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귀여운 사내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영혼을 다시 붙여놓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그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겼던 것이다.
 
그는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
 
그의 사랑 한가운데에서 핵폭탄이 터져버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말은 고작 '다 잘될 겁니다. 아버님'이 전부였다. -본문
 

 

 아마도 이러한 환경 때문에라도 베아트리스는 하루하루의 조무사로서의 삶이 버거웠을 것이다. 죽은 제쥐를 자신의 손으로 받아냈던 그녀였기에 이 병원 안의 또 다른 그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기는 하나 그 이외의 무수한 소음들이 함께하는 이 곳에서 언제나 그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베아트리스는 이 곳이 벗어날 수 없는 철장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알몸의 무희였던 그녀는 사회 속에 살기 위해서 부단히 정상적인 그들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어야만 했고 그럴 수록 그녀는 스스로가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연맹하기 위해서 조무사로서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든 것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늒미을 예번보다 적게 받았다. 게다가 거리의 사람들도 예전만큼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수수한 차림새를 했고, 거의 평범한 엄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문 

 

 그럼에도 그녀가 이곳에서 견디고 있었던 것은 그녀가 좋아하던 조산사인 프란체스카가 곁에 있었고 이미 떠나버렸지만 한때나마 곁을 지켰던 가보루와의 시간들에 대한 잔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카와 가보루는 이제 그녀의 곁에 없고 베아트리스에게는 자유를 욕망하는 자신을 숨기고 조무복 안에서 웃고 있는 그녀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프란체스카를 떠나보내게 했던 이 비정상적인 현실 속에 자신이 있는 것에 갑갑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2호실의 L부인이 버젓이 누워있는 그 곳에 15호실의 입원한 산모가 2호실의 부인의 남편이었던 그의 새부인이라는 것을 보면서 베아트리스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체념을 느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었던 순간 세상을 그녀에게 살인이라는 죄목을 덮어씌고 있었고 그것이 L부인의 심장마비였다는 판명이 나기까지 그 누구도 베아트리스를 지켜주지 않고 있었으니 그녀는 조무사로서의 그야말로 사회가 바라는 '정상적인 삶'에 대한 회한을 느꼈을 것이다. 

 

 파올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지난 8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난 죄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꼭 안아주었고 우리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중략)
 

 

 "파올로, 난 이제 다시는 거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애초부터 거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소. 베아트리스"-본문 

 

 그녀가 앞으로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조무사로서의 베아트리스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알몸의 몸짓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자유를 꿈꾸기 위한 몸짓들이 여전히 그를 뛰게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만이 그녀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엄마가 된 그녀가 자신만을 위한 삶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해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삶을 쫓아왔던 나로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생계와 육아만을 위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나는 베아트리스 그녀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그렇게 하여 그녀가 다시금 날아오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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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 / 넬리 아르캉저


 

 

독서 기간 : 2014.05.23~05.2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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