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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인해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카뮈가 마지막 그 순간을 거슬러 6개월 전부터 모든 것을 담아 그리려고 했다는 이 <최초의 인간>은 그 어떠한 작품보다도 카뮈를 담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미완성 작품이기에 해석이 매끄럽지 않다거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은 공란으로 두기도 하고 심지어 초반과 후반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을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남겨둔 수수께끼와 같은 선물일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탄 그이지만 그의 원고를 읽을 수 없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는 서글픔을 느꼈을 것이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작가로서 더할 나위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고는 있으나 그 순간을 오롯이 함께 누릴 수 없었던 그 순간 그에게 당면했던 현실은 무엇이었을지. 때로는 망망대해 속에 혼자 서있는 섬과 같이 홀로 자란 듯한 그는 어머니로부터 전장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며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뿌리에 대해 찾아가보고자 하고 있으며 그 여정을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에 투영하여 이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다.
스물 아홉 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치는 듯하여 그는 몸속 깊이에까지 동요를 느꼈다. 그 자신은 마흔 살이었다. 저 묘석 아래 묻힌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 –본문
마흔 살인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묘지 앞에 서있다. 태어난 때와 세상을 떠난 그 날의 숫자를 계산해 보면 그가 묻힌 순간은 스물 아홉 살의 청년이었을 때 이 깊은 지하에 잠들었으며 그렇게 자신보다도 어린 나이의 청년이었던 아버지를 마주한 자크는 마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아닌 어린 아이를 잃은 듯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보다 나이 어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과거 및 됨됨이와 어느 면 관련되어 있는 것이며 또 자기 시간은 시간상으로 보ㄷ나 핏줄로 보나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먼 데서 찾아 헤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었다. 말수가 적고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가족이었고, 불쌍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였으니 누가 그 젊고 가련한 아버지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었겠는가? 그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머니밖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았던 사람이 없었다. –본문
그 이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자신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린 그를 마주하면서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삶으로 들어온 아버지에 대해서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전혀 없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살아 숨쉬고 있을 아버지에 대해서 찾으며 그는 세상의 혼자였던 자신을 이어주는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스무살이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고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 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되었다. -본문
자신이라는 이외에 그 어떠한 것도 없이 스스로 자신을 발아시켜야 했던 그 막막했던 시간들을 지나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혼자가 아닌 수 많은 타인들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가 인정되는 그 순간, 그는 다시금 태어나게 되는 인간의 형상을 그리고 있으며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홀로 이 세상에 동떨어져 나아가야 했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삶을 적응해 나가고 있다.
미완성 작품이기에 이전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더 다양한 길 위에서 카뮈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그가 가고자 했던 길과 그가 알아내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확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탐색이라는 숙제이며 또 설렘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몇 번 더 읽어보며 또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