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그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 그녀는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주신 섭섭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이자 규방의 기생이었던 석란이 지어주었던 진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비로소 이제서야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마음 평온히 한 발 한 발을 내딛으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45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그야말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1900년대 초의 조선시대를 기반으로 하여 그려진 배경도 배경이지만 섭섭이의 여정을 마주하면서 우리네 역사 속에 이러한 일들이 있었구나, 라는 것을 우리나라 작가가 아닌 외국의 작가에 의해서 그려졌다는 것이 무언가 낯설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제 3의 입장에서 이 엄청난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 아니면서도 더욱 한국인과 같은 정서를 이해하고 담아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덕분에 정신없이 섭섭이를 넘어 진이의 삶에 빠져들고 있었고 100여년 전에 이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제서야 이렇게 살아나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서 아련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1900년대 초, 하와이의 한인 이민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여성들과 우편으로 사지늘 교환하여 결혼을 결정했다. 사진신부들은 낯선 풍습과 환경에 시련을 겪었지만 한국 고유의 문화와 가치관을 하와이의 것과 융화시켜 한인 사회를 성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문
사진만으로 보고서 결혼을 한다는 당시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엄마한테 여쭤보니 당시에는 그러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요새와 같이 연애 결혼이 아니라 중매 결혼이 당연했던 시대였기에 이와 같은 사진 신부의 이야기는 100여년 전에는 존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도 나는 읽는 내내 과연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머리 속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작은 시골마을인 보조개 마을에도 당시의 시대상은 변함없이 여성들은 학문의 배움과는 거리가 먼, 한 집안의 며느리이자 안집 살림을 이어나가고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평생의 업으로만 인지되는 때였다. 하여 양반집 규수임에도 불구하고 섭섭이라는 이름을 안고 태어난 그녀는 남성들만이 대를 이어갈 수 있기에 부모들 조차도 아들을 원하던 남아선호사상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배움을 요청하는 딸에게 여자가 배움을 하면 팔자가 사나워진다며 극구 반대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어쩌면 배움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던 그녀의 앞날을 예견하며 반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앞에 펼쳐질 파란만장한 삶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훨훨 날아가길 바랐다. 그리하여 사진 속의 남편에 대한 설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하와이라는 곳에 가면 이곳에서 못다한 배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안고 선택한 그녀의 나날이 부디 행복하길 바랐다. 그것이 100여년이 흐른 지금의 내가 그녀의 삶을 마주한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인생이 수보처럼 술술 풀릴 거라고 생각했지. 하나의 천으로 된 널찍한 작품같이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인생은 수보라기보단 자질구레한 쪼가리들을 엮은 조각보 같았어. 예상치 못했던 사람, 하지 않았던 일들을 마주하게 되더구나. 조각보 속에는 그런 조화가 있고, 나름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지. 그래서 조각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본문
삶을 조각보를 기우는 거 같다는 그녀의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삶 앞에 드리운 조각들은 영롱한 빛이 나는 것들이기를 바랐으나 실상 섭섭이 그녀의 앞에 펼쳐진 삶은 하와이까지 가기 위한 여정 속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듯이 회색조의 날것 그대로의 삶이었다. 제 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그녀에게 드리워진 현실은 술과 노름에 빠져있는 남편이었으며 비뚤어진 권위주의에 빠져 있었으며 사진 속의 잘생기고 무언가 느낌이 있었던 그는 현실에서는 제 아내는 물론 태어날 아이에게마저도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폭력을 휘두르는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내가 배워왔던 덕목들, 충실, 희생, 순종을 모두 저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집에 남아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까지 노예처럼 살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옥이에게만 내 계획을 이야기했고 그 애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보탬이 되도록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내게도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다. -본문
그렇게 그녀는 다시금 그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서는 살기 위해서 호놀루로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섭섭이라는 이름은 벗어던지고서 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서는 이전에 어머니에게 배웠던 바느질을 기반으로 하여 매춘부들의 옷을 수선해주면서 그녀의 삶을 다시금 시작하게 된다.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던 그곳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적이 드물어 지고 그렇게 사양의 길을 가고 있기에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가게 되는 그곳에서 진이는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으로 하나의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그녀는 이혼을 감행하게 되지만 그 순간 마주하게 되는 노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저는 경건한 마음으로 결혼했습니다. 중매쟁이가 제게 보여준 사진들 중에서 이 법정에 있는 제 아내를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저 사람은 정말 평범하고 여성적인 매력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을 선택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중략)
저 사람을 하와이로 데려오기 위해서 저는 많은 돈을 썼습니다. 배삯으로 50달러는 보냈고, 저 사람이 완전히 결정한 후 100달러를 더 보냈습니다. 전 부자가 아닙니다. 중매쟁이가 아내에게 저에게 대해서 얼마나 과장되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전 저 사람이 잠잘 수 있는 집과 음식을 주었습니다. -본문
그렇게 그녀의 암울했던 과거와의 영원한 이별을 고했으나 노씨는 그럼에도 그녀의 삶에 계속해서 나타나 그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 마저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며 그녀를 옥죄려 하고 있는 순간들을 목도하며 그녀가 만약 호놀룰로로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만으로도 몸소리가 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10대의 소녀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재회를 하기까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아니 드라마에서도 차마 그려낼 수 없었던 그 한스러운 시간을 그녀는 꿋꿋이 이겨내 결국 그녀의 이름처럼이나 빛을 내고 있었다.
넌 정말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었어. 네가 보조개골에서 어릴 적 만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곱고 풍성한 조각보야. 그걸 완성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단다. -본문
한 여성의 삶을 쫓아서 긴박했던 한 세월을 지나오다 보면 당시의 그녀들의 삶이 이러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 진다. 그 어느 역사 기록 속에도 남아있지 않을 사진 신부들의 삶이 이제서야 수면위로 떠오르는데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평범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의 역사이자 당시의 삶이었다는 것에서, 그렇게 이름 모를 수 많은 여인들의 눈물이 모여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에서 이 책을 덮고나서도 송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