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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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4 16.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그 날 아침, 제주도로 향하고 있던 선박이 좌초됐으며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고서는 안도하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나서는 사망자의 수가 2명까지 늘어난 것을 보며 안타까운 이들의 목숨이 이렇게 아스라히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또 일을 하느라 금새 잊고서 그렇게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날 퇴근하고 나서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뉴스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구조되었다던 수 많은 사람들은 실종자의 숫자로 집계되었으며 그 때부터 수 많은 이들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뉴스에만 집중하고서 온 나라는 침묵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지만 별다른 소식없이 지지부진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침통하리만큼 억장이 무너질 뉴스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모자라 수 많은 국민들의 눈이 집중되고 바랐던 구조는 늑장 대응이 이어졌고, 수 많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할 어른들의 의무는 사라져 버린 그 아비규환의 시간 속에서 대한민국은 분노를 넘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그 화살들을 안고 지금 한달이라는 시간을 견디어 오고 있다.

 

 그 누가보다도 어른인 지금의 나는 세월호의 참사를 보면서 그저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미안해 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이 미약한 개인이, 이 미약한 나라를 만들어 온 장본인 중 한명이라는 것에서 끝없는 회한만을 안고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 분노에 대해서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할지에 대해 답을 얻고 싶었다. 과연 이 분노를, 그러니까 무력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와 이 무력한 사회에 대한 분노, 무력한 국가에 대한 분노 등 이 모든 분노들에 대한 것들을 풀어내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분노라는 것은 신체적인 위협이나 안정성의 불안 등으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가 아닌 신념의 변화에 따른 정신적인 변화의 따라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노는 크게 개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개개인이 속한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분노, 그러니까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분노로서 바라보고 있다.

 

 과거에는 자연 안에서 힘 없는 인간들은 위대한 자연 앞에서 그저 하늘하늘한 존재로서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동시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분노를 느꼈다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사회나, 정치, 경제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실제 자신이 속에 있는 현실에 대한 간극을 인지하는 순간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있으나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라 발생하게 되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이 나라의 어른들로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실종자들을 위한 그야말로 당시에 필요했던 조치들을 취해야 했으나 그러한 골든타임을 놓친 채 무능한 정부와 그들을 보며 발만 동동 굴려야 했던 개개인들의 점차 커져만 가는 분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일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이 생각의 끈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우린느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상이란, 사회가 늘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조화로운 세계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내가 그 사회에서 요구한 넋에 따라 교육받고, 공부하고, 일사고, 사회에서 지정한 적정 시기에 다라 진학, 취직, 결혼, 출산, 은퇴 등을 수행했을 때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 '행복한 안정'을 제공한다. 그런 사회 속에서 나와 내 삶, 내가 속한 이 세계는 일치한다. -본문

 

 분노는 위험한 것이 아니다. 분노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 대한 불합치한 현실에 대한 인지를 통해서 그릇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함이며 그렇기에 정당한 분노는 우리 스스로를 바로 바라보게 하며 부당한 사회를 바른 사회로 이끌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분노는 그 잘못된 것들을 고치려고 하는 하나의 행동으로 이끌 수 있고 그 행동은 정당한 사회를 이끌게 하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가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왜곡된 현상에 대한 분노라든가, 특정 계층만을 향한 분노가 아닌, 그야말로 합리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야 하는데 현대 우리의 사회는 서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길거리에 늘어나는 노숙자들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고 노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들에 대해서 젊은 이들은 외면하고 있으며 젊은 이들의 고민 중 하나인 취업이나 학업에 대한 비용에 대해서 노년층은 별다른 관심이 없이 그저 자신들만의 세대에 있는 문제들에만 치우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상황에 대한 인지는 없이 그저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집단 내의 문제 속에서만 아우성을 치고 있고 그들만의 아우성이 나머지 세대들을 향한 분노로 치닫고 있으니, 이것은 융화되지 않은 분노이자 증오로만 변질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사회를 버린 개인들에게 사회는 결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 같은 다른 누가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본문

 

 이렇게 함께 존속하는 사회는 개개인들의 신뢰가 뭉쳐지면서 만들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 사회 속의 개개인은 그저 빠르게 흘러가는 세렝게티 위해 살고 있는 약육강식의 구도 안에서 살고 있다. 개인이 사회를 믿고 그러한 사회가 개인의 삶을 충족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사회 속에서 버둥거리고 헉헉 거리며 따라가기만을 바쁜 개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속의 괴리감을 느끼며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분노는 건강하고 정당한 것이 아닌 왜곡된 사회 속에서 발아한 불안정한 분노인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분노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들은 집단화 되며 그러한 집단 속에서 극우 혹은 극좌의 형태로서 개인의 모습을 숨키고 집단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이 마저도 왜곡된 사회 속에서 발아한 것이기에 건강하지 못하고 또 다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분노라 점철되게 된다.

 

 극구든 극좌든 집단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궁극적으로 도취와 열정을 바란다는 점에서 승리와 우월감을 통해 자기를 다시 느끼길 원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들은 에릭 호퍼가 말한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라는 명제에서 정확히 동일한 거리로 동떨어져 있다. 그들이 모두 현실을 왜곡하는 망상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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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저


 

 

독서 기간 : 2014.05.15~05.1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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