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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있는 뭔가 뾰루퉁한 표정의 아이를 보면서 지금 그 아이가 속해 있는 현실들에 대한, 그러니까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간의 문제들로 인해서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불만이 가득 내재되어 있다 생각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잊어버리고 있던 일상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지금 나에게 닥친 여러 가지 현실이 엄청나게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에 답답해진다. 자는 동안을 물속에 있는 거라고 한다면, 눈 뜨는 순간은 무겁고 나른한 지상으로 올라온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물속에서 가벼웠던 몸과 마음이 갑자기 무겁고 갑갑해지는 느낌이다. 벌써 몇 년 동안 그래 왔다, 그날, 엄마가 집을 나간 날부터다. –본문
실상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물론 어느 정도의 예상이 맞기도 했지만, 고무기라는 이 아이가 처해 있는 대략적인 상황들, 갑작스런 부모님의 이혼과 전학, 반 친구들의 외면 등으로 인해서 학교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는 모습들을 마주하면서 초반에는 그런 고무기를 안쓰러운 눈빛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아이라면 당연히 아프고 힘들 수 밖에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이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안에 있는 그 누구라도 다 자신만의 사연 안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어 고무기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고무기는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모든 이들의 심적인 변화는 물론 나 역시도 이 안에서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고무기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지나고 난 후 엄마는 홀연히 사라진다. 마치 그때까지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엄마와 아빠는 이혼이라는 결말로 치닫게 되고 그 사이에 있는 고무기는 어떠한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외할아버지가 계신 이바라키도 오게 되고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한 4월 달의 갑작스런 전학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게 한 아이의 불만으로, 이 아픔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어 한 소녀의 삶을 점점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는 주변 이들의 잘못들을 끄집어 내어 고무기가 그야말로 정당한 피해자로써 그녀 스스로 이 모든 난관들을 헤쳐나가고 있는 울지 않는 캔디 버전으로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는다. 그보다도 오히려 그들 나름대로의 아픔을 안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또 사람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고무기를 포함한 주변인들을 통해서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다.
부모님의 이혼과 갑작스런 전학으로 변화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무기는 오늘도 송사리 학교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물가에서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학교에 나가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갈수록 엄마의 걱정은 심해져만 가지만 고무기의 외할아버지는 오히려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으며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를 구속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고무기는 마음의 안식처로 삼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던 세상에 대한 원망은 제 3의 인물에 의해서 표출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서 시라이시 미치루를 만나러 간 곳에서 마주한 치사 언니에 의해서다.
“고무기 너는 네가 외로운 건 전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응?”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나만 외롭고 불행해, 그건 전부 주변 사람들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지?” 치사 언니는 서슴없이 그렇게 말하더니 내 대답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방을 나갔다. 또 화나게 했어. 휴, 이런 기분 정말 싫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슬펐다. 나는 그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하나 봐. –본문
그러나 세상에 대한 고무기의 반항보다도 그녀에게 도래한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외할아버지의 병마로 인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암이 전이가 되어 더 이상의 치유가 불가한,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의 그림을 배달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고무기는 할아버지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환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면 마치 다 나은 것같이 마음 든든하고 청명한 한때가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때가 바로 환자가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인생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시간이다. 그 귀중한 한때를 ‘사이좋은 시간’이라고 한다. –본문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경험했던 것들이 동화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동화가 바로 시라이시 미치루 할머니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리하여 그들이 마지막이 될 그 순간에 함께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아련함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하는 과정 속에서 고무기는 자신을 둘러쌓아 숨막히게 짓누르기만 했던 문제들에 있어서 또 다른 이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고무기가 이전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함께 있다는 것이 때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하지만 그 숨결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서로가 있다는 것은 체온을 나누며 온정을 나눌 수도 있는 거리라는 것을,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또 배워간다.
서로의 그리움을 안고 살고 있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이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고무기는 오늘을 살고 있을 테니, 이젠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