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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없이 노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저 젊은 날의 그들만의 사랑이었던 실수였던 그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녀들에게 드리운 결과, 임신과 출산은 필로미나를 비롯한 1만 여명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수녀원에서 강제 노역은 물론 임금도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으며 하루에 한 시간씩 아이와의 만남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 그 3년의 시간이면 이 모든 죄를 씻고서 아이와 함께 다시금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남겨져 있던 주홍글씨는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에 있어서는 그저 돈놀음이 가능한 무한한 부가가치의 창출로였으며 출산의 고통은 물론 그 이후로 어떠한 병마가 그녀들과 아이들에게 닥친다 하여도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이 모든 것들이 죄인에게 하사되는 운명이라 믿으며 아스라히 사라진 이들은 수녀원 근처의 들판에 묘비 하나 없이 묻히는 것이 일쑤였다.
원장 수녀는 자신이 잔인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녀에게 자선의 임무를 맡겼고, 그녀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하지마 그녀에게 선악의 경계는 너무나 명확했고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육체적인 사랑이었다. –본문
그렇다. 이 엄청난 사건 속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고 있던 종교계는 물론 정치계는 그녀들의 죄를 기반으로 하여 이 끔찍한 일들이 당연한 행태라며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쥐어주고 있었고 또한 정치적인 자금의 연줄이 된다는 이유로 입양에 수월하게 하는 입법안까지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인생 중에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행복했다면 행복한 3년의 시간이 지나 필로미나와 앤터니는 타인들에 의해 강압적인 결별을 하게 된다. 앤터니와 메리는 그 당시 아일랜드의 미혼모 아이들을 입양하는데 있어서 주된 고객이었던 미국의 닥과 마지 부부에게 입양되었고 그렇게 필로미나와 앤터니의 끈은 끊어진 채 수 십 년의 시간이 흘러가게 된다.
우리 진짜 엄마들은 우리가 나쁜 아이라 우리를 버린 거야. 진짜 엄마들은 우리를 미워한거야. 그래서 우릴 멀리 보낸 거야. 나 오늘 나쁜짓 해서 엄마가 나한테 화냈어.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착하게 굴어야 해. 만약 엄마가 우리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알게 되면, 엄마도 우리를 미워할 야. 그리고 우리를 멀리 보낼지도 몰라. 그러니까 항상 착하게 굴어야 해. –본문
마이클로 이름을 바꾸어 삶을 살아야 했던 앤터니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앤터니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피해 의식이 얼마나 또렷이 그리고 얼마나 오래 전부터 형성된 것인지에 대해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앤터니는 평생을 버림 받을 지 모른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야만 했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은 물론 그 어떠한 의문들도 드러내지 못한 채 자신 안에 꼭꼭 감춘 채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앤터니가 아닌 마이클로 살아야 했던 시간 속에서 그가 평범한 듯 하지만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공화당의 주요 인사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동성애자에 대해 극히 보수적인 그 안에서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은 평생의 그의 삶에 대한 모습을 대변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아일랜드로 돌아와 줘서 참 고맙구나. 아들아, 이젠 이렇게 만날 수도 있네…… 하지만 네가 온걸 알려준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아무도 내가 너를 찾아다녔다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구나. 조금이라고 일찍 만났다면…… –본문
필로미나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묻혀져 있을 아일랜드의 안타까운 과거의 이야기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을 필로미나와 같은 수 많은 그녀들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최소한 그녀들에 대해서 그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들부터 거둬들이고 무조건 그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해왔던 우리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반성하고 그들을 도와 더 이상의 필로미나와 앤터니가 탄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에 책을 덮는 순간 마음이 더 바빠지게 된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지내야 했던 그들에게 뒤늦게 나마 송구한 마음을 전해보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