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족보 샘터어린이문고 47
임고을 글, 이한솔 그림 / 샘터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구렁이 족보>라는 책을 펼치자 마자 어두운 낯빛을 한 어린이가 등장한다.

 (무시무시하게 큰) 구렁이를 키울 분..... 없으시겠죠? -본문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던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과연 무언가 큰 일이 생기긴 생긴 모양이구나, 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축 쳐진 눈을 보노라면 벗어나고 싶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지만 피할 수 없는 듯한 느낌도 느낌이었지만 "구렁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되면서 과연 이 말을 언제 들어봤던 단어였던가, 라는 생각에 아주 오래 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한다.

 

엄마가 아이였던 반세기 전에만 해도 당시에는 구렁이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구렁이가 집을 지켜주는 영험한 힘을 지닌 생물이라고 믿었기에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단어의 존재마저도 생경한 지금은 아마도 이러한 구렁이의 씨가 말라버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환경 오염도 오염이겠지만 그보다도 사람들의 보신용으로 급속도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안고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 아이의 방 안에, 엄청나게 큰 구렁이, 사실 처음에 아이는 아주 큰 뱀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는데 아마도 아이에게도 구렁이라는 생물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구렁이가 지금 내 몸을 칭칭 감다가 어느 새 눈을 뜬 아이에게 구렁이는 말을 걸고 있다.

 

 

"난 그냥 내 소개를 하는 거야. 널 휘감은 건 사과할게. 놀랐지? 미안하구나, 어쩔 수 없었어. 네가 누군인지 정체를 확인해야 했거든." 본문

 

갑자기 등장한 구렁이라는 실체에 대해 어안이 벙벙한 아이는 구렁이에게 이제 그만 자신의 방에서 나가 줄 것을 간청하고 있으나 구렁이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그 아이에게 끝까지 자신을 책임여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나가길 바랐다면, 자신의 가족이야기인 족보를 만들어준다면 이곳을 떠나겠다는 협상을 통해서 아이와 구렁이는 이른바 '구렁이 족보'를 만들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죽을 걸 안단다. 바라는 건 간단해. 내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구렁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거야. 그건 너무 쓸쓸하잖니? 새끼들이 그렇게 가고 나서, 난 어쩌면 구렁이가 이 땅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단다. 연기처럼 흔적없이 사라진 생명들을 이미 많이 봤으니까. 우리 역시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그걸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구렁이가 이 땅에서 살았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기자고 결심했어. 그래서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본문

 

 구렁이의 간절한 바람. 그것은 자신이 이 지구상의 마지막 구렁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과 동시에 혹시라도 자신이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구렁이라면, 구렁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남기고자 한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서글픔이 밀려들게 된다. 자연에 의해 때로는 인간에 의해 사라졌던 수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구렁이의 이야기는 구렁이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인간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종이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건 구렁이와 함께 족보를 만들기로 결심한 아이와 구렁이는 그들만의 룰을 정해 놓았고 그렇게 함께 하는 동안 서로는 서로의 모습들에 대해서 하나 둘씩 알아가게 된다. 구렁이가 아닌 '스스 아줌마'로 함께하면서 구렁이의 습성은 물론 스스 아줌마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되고 구렁이 세계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아이는 점점 구렁이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고 스스 아줌마는 아줌마대로 지금 아이가 있는 곳이 안전한 곳인지에 대한 탐색을 펼치게 되면서 그들은 119를 출동시키기도 하고 아빠와의 화상 전화에서 구렁이의 존재에 대해 들킬 뻔한 일들도 마주하게 된다.

 

 

얘야, 인간의 목숨이 여러 개라면 아마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이 지구상에 남아나는 동식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구렁이는 목숨이 아홉 개 아니라 백 개라고 살아남기가 힘들지. 인간의 목숨처럼 생각하면 안되는 거야. -본문

 

 구렁이에게서 까치를 구해준 전래 동화의 이야기 역시도 인간의 눈을 통해서 본 내용과 구렁이의 눈을 통해서 본 내용이 상이하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면서, 인간에게 은혜를 갚은 까치만은 바라본 나의 시각 또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늘 나쁜 것은 구렁이이고 사내와 까치는 서로의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으나 자연이라는 세계 속에 구태여 발을 끼어든 인간이 과연 잘 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한 인간을 위해 수십 마리의 까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우리의 경고망동한 모습들의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옛날, 구렁이는 귀한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주고, 인간에게 해로운 독도 없어서 환영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가시고 끔찍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들은 자기들 집을 짓겠다며 산과 들을 파헤쳤고, 구렁이의 집과 길은 망가져 버렸다. 이제 구렁이는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야 하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길을 건너다가 목숨을 잃는다. 그 많던 구렁이가 이제는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 버렸다. -본문

 

 그렇게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스스 아줌마는 구렁이로서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돈다. 구렁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걱정했던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오롯한 선택은 구렁이로서 어떻게든 다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저 한편의 아이들의 동화라고 하기에는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련해졌던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과연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어떠한 종을 이 지구상의 마지막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들을 해보며 부디 현존하는 모든 것들이 인간과 함께 계속되기를 바라며 책을 덮어 본다. 

 

 

독서 기간 : 2014.04.17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