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볼로의 <내가 원하는 시간>을 읽고 나서는 언젠가는 이러한 문체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간절히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읽어내려갔다면 이번 <아침의 첫 햇살>을 읽는 동안에는 정신을 잃고서는 책을 읽어내려 간듯 하다. 분명 내 눈에 비친 파비오 볼로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 그가 그려낸 모든 것들은 여자를 관통하다 못해 여자가 쓴 글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스쳤으며 너무도 여자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파비오 볼로의 눈을 볼 때마다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을 읽혀버릴 것만 같은 경외심이 들곤 했었다. 그는 '엘레나'를 통해서 수 많은 여성들에게 여자로서의 인생에 대해 안내해주고 있었고 나는 '엘레나'를 보면서 과연 내가 엘레나 였다면, 이라는 수 많은 상상 속에서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한 번 열어 보면 넘기지 않고는 베길 수 없기에 아침 밥도 포기하고 잠을 택한 나에게 이 책은 출근을 앞둔 새벽까지도 오롯이 뜬 눈으로 지새우게 만든 책이었다. 아직 나는 결혼에 대해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이 지나 정으로 산다는 그 말에 대해서도 나는 이해하질 못한다. 먼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의식을 거쳐 함께한 남녀에게 도래할 미래가 그저 살 부비고 사는 가족으로서 남녀의 애정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이라는 것에서 나는 결혼이라는 진실을 거부하고 살고 싶은 바람 뿐이다. 하지만 진실을 사뭇 다르다. 그건 이 집 안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물론 우리는 생전 싸우는 법이 없다. 그는 언제나 나를 인격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나를 안아주지도 않는다. 내게 키스를 하지도,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이 집에서 나는 혼자나 마찬가지다. 결혼은 했지만 집 안에서도, 남편과 차를 타고 있을 때도 나는 언제나 혼자다. -본문 그런 그녀에게, 죽은 것과 마찬 가지였던 그 정적의 시간 속에 그를 뒤흔드는 '그'가 등장하게 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있음을 인식해주게 하는 그를 만난 이후 엘레나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내 딛는 것조차 두려웠던 그 시작이 어느 새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그를 갈망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파올로와 나는 서로에게 약속만 남발해왔다. 많은 걸 뒤로 미루었던 건 사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속이란 점잖은 회피에 불과했다. 우리는 모든 걸 함께했다. 함께 우리의 삶을 현실화시켰고 함께 미래를 꿈꿨다. 함께 우리의 터전을 지켰고 이제는 함께 현실 속에 갇혀 있다. 우리의 관계를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사랑받아야 할 필요성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의 자기기만을 감싸준다는 소용 가치에 의존할 뿐이다. 우리가 만약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을 느겼더라면,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것이 오히려 우리게에 용기를 불어넣어주었을 것이다. -본문 물론 엘레나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모든 것들이 옳다, 라고 지지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명백한 '불륜'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도덕적인 관념 따위는 저 멀리 내던져 버리고서는 그저 한 여자로서의 삶만을 관망하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어지길 바라며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을 꿈꾸는 엘레나에게 미리 자신의 생각 따위는 묻지도 않고 예약을 한 당신이 잘못이라며, 나에겐 이 모든 책임이 없다며 내빼는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는 차로 모시고 사촌을 방문 할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그야말로 '남'의 편인 남편이라는 상념에 젖어 살기 보다는 그녀가 살아날 수 있도록 새로운 뿌리는 내려준 '그'라는 존재와의 시간들이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이었고 그리하여 나는 그녀 스스로가 행복해 보이길 바랐다. 누군가가 널 간절히 원하고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널 바라보고 이해해준다고 느낀다는 건 알겠단 말이야. 하지만 거기서 멈추라는 거야. 적어도 당장은. 아무것도 더 바라지 말라고. 제발 그런 실수 하지 말라는 거야. 정말 네가 뭘 원하는지, 뭐가 필요한 건지 한번 생각해봐. 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해 있는 건지 생각해보라는 거야. 러브 스토리 뒤에 숨을 생각만 하지 말란 말이야. 남자만 내세우지 말고 단 한번이라도 세상에 홀로 선 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봐. 너에게만 필요한 것들을 상상해 보라고. -본문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지금 내 곁에 있다. 처음에 엘레나는 그저 생각했다. 그저 이거면 됐다, 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그와 함께 할 수만 있으면 됐고 그 시간 동안이면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공간에서 다른 누군가의 파우치가 드러나면서, 아니 그에게 빠져들면 빠져들 수록 이 관계는 점차 시소의 평행 관계가 아닌 한 쪽으로 풀썩 기울어 버리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고 세상의 전부였던 엘레나와 그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점차 잠식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엘레나는 이전의 엘레나와 현재의 엘레나로 변화되어 있었다. 일기 속의 그녀가 이전의 그녀였다면 마지막에 있는 그녀는 내가 이전에 알던 엘레나와는 다른 그녀가 되어 있었다. 잠잠하게, 그저 고여있던 검은 호수가 이전에 그녀가 살았던 모습이었다면 마지막에 마주한 그녀는 어디서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녀만의 색깔을 안고 있었다. 그와 함께 살기로 하고 나는 지금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 가는 이유는, 지금 내가 잠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본문 앞으로 그녀가 어떠한 행보로 나아가게 될 지는 모른다. 마지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다시는 그녀 스스로 그 어두웠던 순간 속에 자신을 밀어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로써 두 번째로 마주하게 된 파비오 볼로의 이야기를 다시 빨리 마주하길 바라면서 책장을 덮고 그 아스라한 마음만 가득 안고 글을 마무리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