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호텔, 이라는 단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저 호텔에 관한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손님을 신과 같이 맞이하는 호텔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호텔이 아닌 ‘병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병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전해지는 무거운 느낌의 병원과는 달리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라구나 혼다’는 우리가 쉬이 마주할 수 있는 여느 병원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병원이기는 하나 병원 같지 않은 따스함이 있는 곳. 그래서 왠지 모르게 이 라구나 혼다는 사람 냄새 나는 병원이었으며 그래서 인지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물론 지금의 그곳은 ‘비효율’이란 명분으로 다른 병원들과 똑같이 획일적으로 전락해버리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젊은 의사, 심지어 중년의 의사들조차 이해하기 쉽지 않은 특성이다. 운이 좋아한 번도 환자가 되어본 적이 없거나, 적어도 토드 양 같은 환자는 되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의사들은 건강하고, 호기심 많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젊은 학생에서 시작한다. 그런 우리가 불행이나 신의 뜻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본문
병원에 대해서, 의사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다고 하면 개중에 어떠한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 혹은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단순한 감기조차도 차트 안에는 의학용어로 기재되고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 그야말로 불가침의 영역인 이기에 병원이든 의사를 선택한 이후 환자와 의사는 대등한 관계가 아닌 환자가 의사에 100%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가족 중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해 본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의사의 검진 시간이 되면 긴장하고서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환자에게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알아내보려 하는 그 관계가 지속되는 병실 안에서 온기보다는 차갑지만 그 순간순간 치료를 위한 의료 행위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생과 사를 자신의 손 안에 좌지우지하는 이들이기에 한편으로 그들의 입장 또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서양 의술은 환자를 환자가 아닌 그저 사람이라는 물체처럼 보아야지 병을 즉시해서 바라보곤 한다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시퍼런 날이 선 메스와 굵은 땀방울이 가득할 것만 같은 병원의 이미지보다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가득한 ‘라구나 혼다’는 그런 의미에서 병원이라기 보다는 ‘신의 호텔’일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 의사간에는 장벽 따위는 없는 그저 가족 같은 모습으로 이 안에서는 그들 자체가 안고 있는 페르조나는 없이 그저 사람 대 사람만이 있는 것이다.
커티스 선생과 신발 사건 이전에 나는 훌륭한 의사가 되려고만 노력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것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커티스 선생이 그 기준을 올려놓았다. 토드 양은 내게 식단을 변경하거나, 새 안경을 처방해주는 등의 사소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커티스 선생은 가끔씩 내가 손수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직접 안경을 고쳐주는 일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본문
퇴원하는 환자가 요청한 신발이 도착하지 않아 몇 주 동안 퇴원 수속을 밟지 못하고 있는 환자를 위해서 마트에 달려가서 신발을 사와서는 전해주기도 하고 에이즈 환자들의 병동에 작은 병아리를 넣어주고서는 모두가 함께 키우고 있고, 병동으로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손뜨개로 작은 덮개를 만들어 주고 있는 이 병원은 감사원들이 본 것처럼 그야말로 ‘비요율’적인 병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기는 하나 어찌되었건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이 병원 나름의 또 생존을 위한 철칙이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받기 꺼려하는, 오 갈데 없는 환자들이 가득한 이 라구나 혼다는, 휘황찬란한 빛깔을 내는 백화점들 사이에 숨쉬고 있는 재래시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감들이 있기에, 그 온기는 저자는 물론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병원은 병원답게 사람을 살리는 의료행위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바람들은 아버지의 입원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의료행위에는 치료를 위한 수술이나 올바른 진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환자를 살리는 것은 사람의 따스한 온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어느 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으셨던 아버지가 살아나신 것은 꼭 고쳐 줄 테니 나중에 감사의 눈물로 보답해 달라는 한 의사의 한 마디였듯이 저자 역시 이 라구나 혼다에서 다른 곳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온정을 배우게 된다.
물론 그전에도 나 자신을 던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완전하게 던지지는 않았따. 겨우 환자를 찾아간 15분 동안만, 정밀검사를 하는 두 시간 동안만, 아니면 두 달, 혹은 여섯 달 동안만 나를 던졌다. 하지만 커티스 선생을 보고, 크리스티나와 래시를 보고, 댄 선생과 돈 테일러 씨,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차츰 그렇게 하는 것은 제일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이 아님을 배웠다. 최고의 의사는 당신과 함께 약국까지 걸어가서 당신이 그 약을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봐주는 의사다. 이들은 전이와 역전이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을 가르쳐주었다. –본문
비효율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지구 상에 존재하기 힘들지 모른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그곳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자의와 상관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지키려고는 했으나 스스로 그 손을 놓아버린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병원의 유일한 소명이라면 지금의 라구나 혼다는 그 어느 병원보다도 그 몫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치유의 힘을 전해주고 있는 이 라구나 혼다는 어쩌면 이 세상의 유일한 것을 우리 손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의료민영화 역시 이 병원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그 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