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 30년 직장 생활 노하우가 담긴 엄마의 다이어리
유인경 지음 / 위즈덤경향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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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높은 하이힐을 신고 한 걸음걸음마다 자신감이 넘쳐나며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서는 도심을 누비는 멋진 커리우먼을 그려보면서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바래왔었다. 사무실에서는 전화며 이메일이며 외국 바이어들과의 대화를 유능하게 이끌어가며 언제 어디서나 빛이 나는 여자로 쌓여가는 서류보다도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 나가기에 모든 이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인정 받는 여자가 될 것이라는 부품 꿈을 안고 입사만 하면 탄탄대로를 건너게 될 줄 알았다.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과 출입증 카드를 발급 받는 순간 이 모든 환상과도 같은 나날의 시작일 것만 같았는데 이게 왠걸. 전화를 당겨 받는 법도 돌려주는 법도 제대로 모르고 있던 나에게 자리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시한 폭탄처럼 느껴졌으며 복합기 앞에서는 문맹아나 다름 없었고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고역스럽게만 느껴지고 퇴근만 하면 긴장이 확 풀리면서 주말에는 시체처럼 잠만 자며 다음주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적응을 해 나가면서도 여전히 부서의 막내였던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화분에 물을 주고 부서의 책상들을 정리하며 걸레질을 하는 것은 물론, 일을 하는 도중 손님이 방문하게 되면 조용히 커피를 들고서는 회의실로 직행해야 했다. 사실 초반의 얼마간은 이 모든 것들 것 대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과 무엇을 위해 십 여 년의 세월을 책상 앞에서 씨름하고 있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막연한 회한이 밀려들었다. 당시 선임이셨던 과장님은 이 모든 것들이 너 스스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들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이해하지 못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라는 곳이 소리 없는 총성이 오가는 곳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도마에 오를 수 있는 곳이 바로 회사라는 것을 깨달으며 점점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많은 안다는 것은 온몸으로 배워가는 중이다 

1980년대 초반에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솔직히 마귀할멈이란 비난을 받아가며 여성인권을 주장한 선배들 덕분에 무임승차 혜택을 누린 면도 있다. (중략) 그런데 이제 여성들은 대등한 동료, 심지어 상사가 된 후에 많이 당황한 남성들은 보이지 않는 장막을 더더욱 많이 장치해 놓고 있다. 어쩌면 겉으로 여성시대를 내세우는 지금 정작 여성들에게는 더 위험한 시기다. –본문

 

사회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안고서 설렘만을 생각했었다. 낙원과 같은 이 평화로운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따스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일터를 꿈꿨던 나에게 사랑은 마치 동화 속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며 세상의 모든 사랑을 아름답게 미화시켰던 것을 마냥 믿고 있었던 내게 그것은 진정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임을 알려주던 것처럼 사회는 녹록치 않는 전쟁터임을 알려주었고 과연 그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매 순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라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회사였다. 친구나 선후배 관계라면 터놓고라도 이야기를 하겠지만 상하 관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이 곳에서는 갑과 을이라는 위치에만 있었고 그리하여 A를 처리하란 상사의 명령에 A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것을 자연스레 자신이 작성한 듯 프레젠테이션으로 제출하는 상사를 보면서도 조용히 눈 감을 줄 알아야 했으며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했으나 고객에게 클레임이 걸려올 경우, 상사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내 스스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서 발생한 일이라 상부에 보고를 하는 것을 보고도, 그러면서 피식 웃으며 내가 xx씨 이름 좀 팔았어, 이해하지?’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곳이 바로 직장에서의 암암리의 룰이었다.

과연 이 망망대해의 사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늪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 걸까? 그 막연한 물음에 대해서 30여년간 사회 생활을 한 당사자이자 딸을 둔 엄마로서,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고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수 많은 딸들에게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하여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해주고 있었다.

 학생일 때는 몰랐던 직장인으로서의 고충을 몸소 느끼다 보니 그녀의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나에게도 오롯이 전해지고 있었고 그래서 가끔은 울컥한 마음이 일기도 하고 이럴 땐 이렇게 했어야 했구나, 라는 반성을 해보기도 한다.

 남자들처럼 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적당히 빠져 나오는 것을 우선시 했고 퇴근 후 회식자리에 대한 권유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으며 아침에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준비보다는 책을 스캔하기에 바빴고 상사에 대한 불만은 은연중에 동료들에게 털어 놓는 나를 보면서, 씩씩거리는 나날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란한 사회 속에 어느 정도는 적응하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엄마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바라본 나의 사회 생활은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의 상사인 그들에게도 나와 같이 신입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수 많은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 과연 그들에게도 어리숙한 순간들이 있었을까, 싶었을 그들에게도 처음인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처음이라는 것들의 경험을 축적해오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을 발휘하게 되는 지금이 있었노라, 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이 되기도 하면서 또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배워나가기도 한다.

 만약 내가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스토리를 아니까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소한 일로 고민하며 끙끙거리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다시 들춰본 책도 전에 읽은 것과 다른 느낌이 들고, 두 번째 보는 영화도 안 본 장면이 많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잖이.
 
그러니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사는 것이 힘들고, 매사 미숙하다고 해서 자책할 이유가 없다. 어제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반복했다면 반성해야 하지만, 계속 나타나는 새로운 과제물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비난할 이유는 없단다. –본문

아직도 낯설고 어려운 것들이 있다는 그녀의 고백을 들으면서 몇 십 년이란 사회생활을 한 그녀에게도 여전히 힘든 일들이 있다는 것에서 이제 고작 1/10의 시간을 보낸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황망한 믿은 이었는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 책만 보면 사회 생활에 성공할 수 있다! 라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축 늘어져 있던 어깨에 토닥토닥하며 따스한 손길로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 서툴고 어렵고 모르는 것들이 당연한 지금의 나에게 지겹고 힘들기만 한 사회생활이 아니라 그럼에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듯 하다

 

아르's 추천목록

 

『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 / 김화동저

 

 

 

독서 기간 : 2014.03.15 ~ 03.1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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