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유유히 우산을 쓰고 가고 있는 한 남자의 우산 속은 붉은 색 빛으로 드리워져 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또 다른 한 남자를 향해 있는데,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만 같은 길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 길로 쉬이 갈수가 없다. 아마도 우산 속에 있는 그에게 드리워진 붉은 빛이 그를 더 눈에 띄게 만들고 그리하여 그가 더 사람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게 되어 그의 자유는 오히려 구속되고 있다.

 

 1938년도의 어느 하루는 평범한 듯 하지만 평이하지 않게 시작된다. 팽선생을 쫓는 듯한 스페인 남자를 뒤로하고 얼마전까지 자신의 환자였던 남자의 부인이었던 레오 부인을 마주하고 있는 현장은 다급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마저 휩싸이게 한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누가요?"

 "저기, 계산대 옆이요. 모르는 척하세요.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요. 나는 그들이 마치 성자의 화신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나요?"

 "제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천사들이라면 젊고 불그스레한 살결을 가졌어야지요. 저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밤금 감옥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데요." -본문 

 

 3월 말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바예호는 어떠한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의아스러운 것은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의사도 그를 딱히 치료해주지도 않고 그저 방관의 자세로 그가 죽어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레오 부인의 부탁으로 바예호를 치료하려 하는 결심을 한 팽선생에게 그를 줄기차게 뒤쫓아왔던 스페인 남자들은 바예호의 치료를 포기할 것과 그 댓가로 거금을 내밀고 있다. 

 

 깨어있음과 잠이 든 상태의 경계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최면술사 팽선생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 스스로가 자신이 치유하는 환자들과 같이 모호한 상태 빠져들게 된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어느 것이 꿈인지에 대한 명백한 경계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는 찰나 결심을 하고선 아라고 병원으로 바예호를 만나러 가는 그는 결국 바예호나 바예호 부인을 만나기도 전에 간호사에게서 퇴출을 당하고 그 사건 이후 레오 부인에게도 연락을 해 보지만 그녀 역시도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팽선생을 쫓아 다니던 스페인 남자를 미행하며 들어가게된 극장에서 그는 플뢰뫼르부두를 마주하게 되고 플뢰뫼르부두에게 스페인 남자가 자신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묻는 장면에서 플뢰뫼르부두를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팽선생을 안심시키고 있다. 그를 통해서 최면술을 통해서 죄인들을 심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팽선생은 자신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심상치 않음을, 그리하여 바예호는 물론이고 자신마저도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을 즉시하게 된다.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그곳에 그가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딸꾹질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경련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바예호 씨" 더듬거리는 말조차도 거의 입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기어들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림자가 다시 딸꾹질을 시작했을 때, 그 소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꾸며 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만 같았다. -본문
 

 

 바예호를 만나려고 하면 할 수록 그에게는 다가갈 수 없고 점점 팽선생 주변은 그와 바예호를 마주하지 못하도록 압박으로 그들간의 간극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날 역시 습관처럼 병원 앞을 서성이고 있던 그에게 잠시 떠나 있었다던 레오 부인은 자신의 약혼자라며 장 블르크만을 소개하고 있고 그녀는 팽선생에게 "아직도 선생님은 다 이해햐지 못하고 계신거 같아요" 라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 바야호 씨는 시인이었어요" 레노 부인이 말했다.
 "
그건 몰랐군요. 당신이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맞아요, 그는 시인이었어요.." 레노 부인이 대답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 비록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가난했지만 말이예요." 

 "이젠 유명해지겠지요." 블라크만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힐끗 시계를 살폈다.  -본문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하고 나서는 다시 앞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대체 이게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것일까. 마치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났을 때와 같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도통 분간이 안가 몽롱함에 빠져있는 듯 하다. 문제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대부분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이 들끓고 있던 당시 전체주의란 이름 하에 당연시 되어 오던 시인 바예흐를 모티브로 하여 그린 이 소설은 그의 조용하지만 석연치 않았던 죽음을 이 곳에서 다시금 조명하고 있다. 부조리했던 삶의 바꾸려 부단히 노력했던 바예흐는 그가 바꾸려는 세상에게 오히려 잠식당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묵상하고 외면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현재의 부조리를 탐닉하고 있는 이들이 계속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마치 팽선생을 쫓아 뇌물을 주던 스페인 남자들이나 플뢰뫼르부두가 바예호라는 진실을 마주하지 않길 바랬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레오 부인까지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녀 역시 이 모든 연극 속의 조연일 지 모른다.  

 

 아마도 나는 또 다시 인생을 산다고 해도 바예호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선동하여 세상을 움직이려는 시도보다는 지금처럼 조용히 세상에 묻혀 살고만 있을 듯 한데 과연 세상은 이 조용한 자유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만 있을까?라는 생각에 섬뜩함이 밀려온다. <팽선생>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듯이 세상을 바꾸려는 이와 현재의 세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매트릭스의 파란약이 주어질 것이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실제 현실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감춘 장막으로 덮으려 하는 이들과 그 이면의 실제를 보려하는 자들의 암투가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은 현실일까? 이 간단한 물음이 이 책을 통해 투과되어 향하고 있는 그 순간, 과연 우리의 현재는 안녕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잠들어 있는 것일까, 깨어 있는 것일까? 과연 깨어있다면 그 누가 원하는 세상 속에 깨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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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 강지영저 


 

 

독서 기간 : 2014.02.10~02.1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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