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얼마나 파괴시킬 수 있는지, 삶이 통탄스러울만큼이 파괴된 이는 그를 파괴한 자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커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담긴 이 야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의 고백이 그저 그 시절을 겪은 저자의 필력을 따라 읽는것만으로도 또 얼마나 아프고 아련하게, 그리하여 읽는 것마저 힘든었는지에 대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 앳된 모습도 사라지지 않은 한 소년이 담배를 물고 있는 옆 모습을 보노라면 이미 세상을 다 산듯이 체념한 모습이 보인다. 아니, 체념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상념을 안고서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처음엔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빨리 이 내용들을 읽어봐야만 했다. 저자에게 있어서 개같은 시절은 무엇이었는지, 과연 이 소년에게는 어떠한 비밀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엄마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던 한 소년이 있다. 엄마의 오롯한 사랑을 다 얻기도 전에 빈 자리로 남아있던 아버지란 사람이 돌아왔다. 소년은 1/2 + 1/2의 사랑으로 1이라는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아니 암울과 비극의 전조가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친위대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는 전쟁 이후 상흔을 고스란히 그의 가족에게 전가시키고 있었다.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해 주변 인물들 마저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그는 그의 가정을 다시 전쟁터로 만들게 되는데 정신이 피폐해져 돌아온 아버지라는 인물은 좀비처럼 그들의 세상을 좀먹어가며 모든 이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었다.

성물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직옥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옥에는 소란도, 엄청난 화염도,식인 마귀도, 절규도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존재의 무의미함을 일째워주는 고스 그곳이 지옥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렇게 했다. -본문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지내야, 아니 어떻게든 살기 위해 버텨야 했던 그 시간들을 지나 그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비상하려 하고 있었다. 연극배우며 건설현장에서 작은 일들을 하는 등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자신의 가정을 송두리째 먹어치우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이미 집을 나간 상태였고 그는 봉사라는 이름을 단 아버지의 명령과 폭언과 폭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했으니 말이다.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그것은 그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글쓰기는 이전에도 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지만 일기장에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됐다. 그러나 나머지 인류에게 가려진 채, 서랍 속에서 고요히 졸고 있는 단어들은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나의 내면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 인정, 스스로에 대한 가치 평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라는 황홀감 등은 주지 못했다. 대중의 가치 평가를 받아야만 글쓰기가 비로소 기적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본문

말도 안되는 이 현실을 목도하면서 어찌되었건 그는 지금 이 책을 집필하여 그 자신의 시간들을 '시절'이라는 과거형으로 묶어 놓고 그는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전쟁이 만들어낸 괴물은 또 다른 괴물을 양성해내려 했지만 그 괴물과 함께 살아온 그는 그 시간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뎌오고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고 담대히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누구도 그의 고통을 오롯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이겨낸 이들이 있으니 그 고통을 지내고 있는 이들에게도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러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들이 더 이상은 없길 바라며, 그리하여 이 고통스런 고백이 그가 마지막이길 바라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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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은수연저

독서 기간 : 2014.02.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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