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무언가 따스하면서도 때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의 구성들이 있었다면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책의 제목과는 달리 행복하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 <런어웨이>는 뭔가 아련함이 맴도는 작품들이 담겨 있었다.
<런어웨이>의 칼라를 보노라면 마치 ‘그린 라이트를 꺼줘’의 사연 속 어느 한 여인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변할 것이 없는 남편 클라크와의 사이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의 하루를 보면, 과연 그녀에게 나는 무슨 충고를 해 줄 수 있을까?
사실 그녀의 부모님은 이 결혼에 대해서 반대를 하셨고 그녀의 남편인 클라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부모님과 클라크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했던 칼라에게 도래한 현재의 상황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모습인지는 몰라도 모든 것이 한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듯 해서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칼라는 클라크와 함께 집에서 벗어나 빨래방에도 가고 카페에서 커피도 사 먹으면서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대화가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가 남편을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슬픔이 목까지 차올랐다. 샤워의 열기 때문에 눈물샘이 터진 게 틀림 없었다. 클라크에게 기댄 칼라는 그대로 무너지며 엉엉 흐느껴 울었다. –본문
어찌되었건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실비아의 옷을 입고 실비아의 도움을 받아 이 곳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칼라는 버스를 타고 토론토로 이동하는 도중 점차 그녀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클라크가 없는 곳에서의 하루를 상상하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일생의 큰 목표였다면 그가 사라진 내일부터는 그녀의 삶에는 또 다른 희망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머리 속에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해서 그와 마지막으로 이야기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녀는 토론토로 향하던 버스를 박차고 다시 암울했던 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플로러는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황망한 자유를 찾았을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모르는 바이지만 나 역시도 플로러의 삶을 갈망하면서도 칼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아니야, 라는 대답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에서 무언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읽어 내려갈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을 못했었는데, 아마도 이 진한 잔상이 앨리스 먼로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 드레스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죽여버릴거야.” 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이 소설 속의 로빈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히스테리가 넘치다 못해 미쳐버린 줄만 알았다. 옷을 준비해 놓지 않는다고 죽여버리겠다니. 이 끔찍한 이 이야기를 입에 담고 있는 그녀의 1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녀가 얼마나 절절하게 이 드레스를 찾아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로빈은 모든 것을 1년 전 그날 밤으로 돌려놓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속했던 세상은 물론 다른 세상이었다.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 세상이나 다름없는 그런 세상이었던 것이다. 엉성한 양속, 의식과도 같은 키스, 그들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진행 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본문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어디선가 나에게도 일어날 법한 그녀의 하루를 쫓다 보면, 그리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터덜터덜 돌아와 현실을 마주한 그녀를 보면 왠지 울컥하게 된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 어느 세상이 나를 주인공으로 맞이해준 적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에게 삶의 작은 자비만이라도 비춰졌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여 따스하게 매듭 질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은 그저 아련함만 남겨 놓고 있다.
평론가가 아니기에 감히 그녀의 작품에 대해 가타부타 할 수는 없겠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나서라도 그녀의 이야기는 읽고 나면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계속해서 곱씹게 한다. 서글프다, 라는 단어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 동안 내 머리 속에 계속 맴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