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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들이 그렇겠지만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서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일종의 참회의 시간을 가질만한 깜냥이 생기는 듯 하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은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5단계에 따라 부정 – 분노 – 타협 – 절망 – 수용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지하면서 그 단계를 통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모습들을 그리며 이 단계 속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것이 행복이라기 보다는 그저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만을 하면서 지내던 클레어에게 부모님의 암 소식이 이어진다. 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 그녀의 나이 불과 14살때였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늘 있어왔던 것들이라 그에 대한 별 다른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아버지의 사업은 급작스럽게 기울게 되면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그 와중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병은 완치가 되게 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다는 건 몸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과 같다. 결국은 낫겠지만 그 흉터는 영원히 남는다. –본문
그렇게 갑작스럽게, 조금의 더 시간이 있겠지, 하는 순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떠나버리게 된다. 오랜 시간 암을 앓아왔기에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었겠지만서도 상상 속에서 그려봤던 일들을 실제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그 느낌은 아무리 그려본 것들이라 해도 익숙해지기 힘든 법이다.
이렇게 어머니가 떠나 간 그 자리에 아버지만 홀로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 역시 전립선 암이 재발하게 된다. 어머니를 잃은 것만으로도 버거울 만한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그녀는 그 순간들을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내가 발견한 유일무이한 치유법은, 그저 같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 그걸 보고 들어줄 누군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효력을 발휘한다. –본문
그 아릿하고 아플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을 넘어 그녀만의 수용의 시간을 지나 온 그녀는 그리하여 그녀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나에게 역시 언젠가는 도래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 라는 바람과 그 시간이 최대한 늦게만 오길 바라는 마음만을 안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부모님의 부재에 대한 의미와 오롯이 혼자가 될 내가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 지금 가진 것을 마음껏 누리고 사랑하고 지내라는 그녀의 아버지의 이야기에 울컥 다시금 눈물이 나며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