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이동하는 동안에 책을 읽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 이라며 애통해 하면서 금새 한 권은 전철 안에서 다 읽어버렸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쉬었다 읽었다를 반복하는 동안에 그들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무표정하게 혹은 심드렁한 일상 속에 무디게 넘겼던 나날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내일 하면 되지, 하면서 미뤘던 내 자신에 대한 책망을 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버린 이 운명체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한한 사랑을 주며 든든한 내 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를 주는 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가족이기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시간들을 다시 지나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을 보내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이야기들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가족이기에 다 알고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에 유야무야 지내는 경우다 다반사이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괜찮을 것일까? 생각만 하다가 놓쳐버렸다는 그네들의 이야기들 목도하다 보면 지금이 과연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렇게 울컥하게 된다는 것을 금새 인정하게 되 버린다.
할머니는 비닐봉지에서 빵 하나를 꺼내 드시고 계셨습니다. 우유는 고사하고 물 한 잔 없이, 퍽퍽한 빵을 우걱우걱 씹어 드셨습니다.
‘목멜 텐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달려가 음료수 하나라도 사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음료수는 커녕 껌을 사지도 말 한마디도 건네지도 않았습니다.
내 남루한 배려심은 아주 작은 번거로움이나 쑥스러움을 이길 깜냥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본문
누군가를 위한 나눔을 하는 그 순간조차도 잠깐의 번거로움이나 쑥스러움을 이길 군번도 못 되고 지나치면서 ‘다음에는 꼭!’을 수없이 외치는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면서도 또 너무 나와 닮은 모습에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 남루한 배려심이 언제쯤 당당히 빛을 볼 수 있을지. 다음으로만 미워야 했던 우리에게 어떠한 결말이 남겨질지에 대해 이 책 속의 수 많은 이야기들은 알려주고 있다.
“그나저나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오전에는 교통정리하고 오후에는 공짜로 안아주기를 하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숨길 일은 아니죠. …… 사실 몇 해전, 제 손자를 잃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죠. 손자를 먼저 보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 거예요. 손자 녀석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저는 늘 딱딱한 말투로 사나이는 씩씩하고 용감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제가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손자를 안아준 적이 없지 뭠니까. 그게 어찌나 그 녀석한테 미안했던지…..” –본문
이토록 극단적인 결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미련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되돌리고 싶어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을 때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저 지나쳐 왔는지에 대한 반문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꾹 참으며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더 이상 미루는 것이 없이 하루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다짐이 또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들었을 때의 그 통감했던 눈물을 잊지 않도록 종종 이 책을 펼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