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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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대학생 때 문득 책을 읽어볼까, 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일본문학 코너로 가게 되었다. 당시 인문파트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영/미 소설은 왠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기에 일본 문학 분야를 뒤적거리다가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을 이래저래 만져보다 한 권을 빌려 나온 기억이 난다.

 이전부터 책을 계속해서 읽어온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문학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무언가 소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야기들이 있는 듯 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니와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은 당시 주변 친구들도 종종 읽는다고 했기에 별 다른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가오리와 바나나라는 우리나라 단어 속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저자의 이름 안에서 그 단어들을 발견하곤 혼자 피식 웃기도 하며 어린 시절 이름을 가지고 친구들을 놀렸던 그 때의 모습 또한 겹쳐져 아무래도 이들이 친근하게 느껴진 듯 하다.

 그렇게 그녀들의 책을 몇 권 빌려 읽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어느 책이 어느 저자의 책인지 제대로 구분도 못할 만큼 뒤죽박죽의 사태까지 도달했으며 그럼에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곤 했었기에 지금도 신간이 발행되면 잊지 않고 그때처럼 그녀들의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울 준비는 되어있다>를 거쳐 <반짝반짝 빛나는> <잡동사니>, <한낮인데 어두운 방>을 보면서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들이 점차 내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경계의 선을 오가는 상태가 있게 되면서 그녀의 이야기들을 바로 바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보는 것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직 젖 살도 빠지지 않은 발그스레한 볼을 하고 있는 소녀가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하고 탐하는 느낌이랄까. 왠지 요 근래의 이야기들은 내가 100%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있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종종 있기에 아직은 그녀의 이야기를 내 안에 담기는 버거운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책 역시도 지금이 아니라 나이가 조금 더 든 후에 읽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 책은 그녀의 신작 소설이 아닌,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일상에서 겪은 것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였으며 그 당시의 그녀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그 때 당시의 그녀는 어떠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현재의 나와 책 속의 이야기들을 겪었던 그녀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은 당시의 나이 대에서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을 거란 바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 막연한 바람이 정말 그렇게 다가오니 무언가 감격스러운 느낌이었다.

 한 바퀴를 돌고오자, 덩그러니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짓고 아까보다 좀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계속 울리는 음악, 회전목마에서 울리는 음악은 왜 이리 처량한 것일까. 망가진 악기로 연주하는 것처럼, 목마는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돈다. 남자와 만난 지 3년이 지났다. 미친 듯이 사랑했다. 끝내는 이런 곳까지 오고 말았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마음이 고요하고 선명해졌다. 나는 또 혼자가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본문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핑크빛으로 모든 세상이 물들어 버릴 것만 같던 20대의 초반과는 다르게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사랑이라는 것이 달콤함보다는 비리고 쓰라리기로 하며 때론 검디 검은 멍처럼 느껴지는 듯 하다.

 10대에는 정신 없이 학교에 오가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성년의 날이 되며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난 20대에는, 사실 성인이라고 해 봤자 이제 갓 태어난 병아리와 같은 모습이지만, 어찌되었건 그 때는 정말 내 자신이 어른인줄 만 알았다.

 모든 세상이 내 발 아래 있을 것만 같던 그 패기는 젊은 날의 허상과도 같이 사라졌으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춘기는 10대가 아닌 20대에 더욱 격하게 겪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초반과 중반과 후반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 생각이 무섭게도 변화했었으니 말이다.

 구름 다리 한 가운데서 죽은 이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망상과도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분명 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이라든가, 동생과 자신을 떡 굽는 여자와 홍차 끓이는 여자로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 속 생활들을 엿볼수록 이때의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특히나 이 책 속에는 에쿠니 가오리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소개도 꽤나 많이 되어 있었는데 책을 보면서 그녀가 말하는 책들을 검색해보아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 혹은 있다고 해도 너무 오래 전에 출간되어 이미 절판이 된 것들이 많은 터라. 하긴 이미 20여년 전에 그녀가 읽은 것들이니 그럴 수 밖에는 없지만 아쉬움이 계속해서 일곤 했다. 지금의 내가 그녀가 당시 읽은 책들을 본다면 나는 어떠한 생각들을 할지 비교해 보고픈 마음이었지만 그럴 수 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만 다가온다.

 인생의 여름날, 달달했던 그 아이스크림. 끝내는 시간과 햇빛에 녹아 없어져버리지만, 절대 남김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몸 온갖 곳에, 그 끈끈하고 달달한 감촉이 남아있다. –본문

 그렇게 혼자였던 그녀가 이제는 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간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는 일이라며 결혼이 잔인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 안에서 그녀의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툴툴거리는 것마저도 왠지 부럽게만 느껴진다.

 20여년 전 젊었던 그녀가 거리를 오가며 느꼈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20여년이 지난 지금 내 손위에 올려져 있고 시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대인 그녀와 나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 듯 하다. 이 책 이후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나왔다는 우는 아이는 또 어떠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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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에쿠니 가오리저

 

     

 

독서 기간 : 2014.01.08~01.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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