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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방영 중에 있는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그녀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나에게 심심치 않게 드라마가 그녀의 삶을 미화시키며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리곤 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한 여인의 이야기가 이토록 시끌벅적 한 것일까? 라며 비화를 찾아보니 건 고려의 여인이었던 그녀가 원나라의 공녀로 선발되어 먼 훗날 황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황후가 된 것이 아닌 그 이후, 그녀의 행보였는데 이후 고려를 침략했다는 기록을 보는 순간, 대체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드라마 속 승냥이라 불리는 하지원 역이 기황후의 역할일 것이고 고려의 왕과 황태자 사이에서의 삼각구도를 그리고 있던 모습 속에서 차후에 들어날 역사적 진실은 아득하면서도 현재 이 곳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선택이 원망스럽기까지도 했다.
저자 역시도 이 부분 때문에 그녀를 모티브로 하여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까지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 소설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알아볼 수는 없을지언정 이토록 회자되고 있는 그녀의 삶과 그 때의 모습들을 마주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승냥이로 불리는 기황후인 그녀는 이 소설 속에서는 ‘기완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었으며 그 누구라도 보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외모를 안고 있는 그녀는 격구를 좋아하는 호탕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 뜨거웠던 격구장에서 마주하게 된 기완자와 최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눈에 반하게 되었으며 부부의 연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이들의 소박한 꿈은 최원직의 반대와 공녀 선발이라는 제도가 그들 사이의 붉은 실을 도무지 이어 붙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완자에게 최영은 이미 서방님이었다. 혼약을 맺은 것이 혼례식을 올린 것과 무엇이 다르랴! 아무리 몽골의 주구 노릇을 하는 결혼도감이라도 이미 혼약한 한 쌍의 남녀를 가를 수는 없으리라. 기완자는 입술을 꼭 깨물며 한 가닥의 희망을 품었다. –본문
매파 앞에서 혼약을 올린 것으로 이미 부부의 연을 맺어진 것이라 생각했던 최영과 기완자 앞에는 넘을 수 없는 시련이 그들을 점점 갈라놓고 있었으며 혼인을 한 상태로 공녀로 선발되어 버린 기완자를 구하기 위해 수 많은 이들이 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이 땅에서 당당히 웃게 만들 수가 없었다.
“ 이 나라의 왕이었던 내 아들 충혜가 원에 잡혀 있고. 나 또한 언제 원으로 잡혀갈지 모르는 몸이거늘…” –본문
이렇게 혼자 되뇌고 있는 충숙왕을 보면서 당시 지난했던 역사 속의 우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이 나라의 왕자는 물론이거니와 왕마저도 원나라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당시 우리네 조상들의 한스러운 삶은 그 누구도 구제해줄 수 없는 그들의 슬픔이었다는 사실이 울컥하게 한다.
어찌되었건 몸은 원나라에 있다고는 하나 마음만은 오롯이 최영을 향하고 있는 기완자는 어떻게든 자신이 살고 있던 고려에서 최영과의 삶을 되돌려 보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더 깊은 곳을 향해 지나가고 있었다.
황제였던 토곤의 눈에 띄었던 기완자는 그리하여 귀비가 되었으며 황태자를 잉태한 그녀는 그녀만의 지아비였던 최영 대신 자신의 아들을 위해 황후로서의 삶에 매진하게 된다.
원나라 전역에 고려의 옷과 풍습을 유행시켰던 고려의 딸이었던 기완자가 기황후라는 이름으로 원나라에 사는 동안. 또한 아이유시리다라의 어머니가 되어 황후로서의 삶을 사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과연 실제 그녀는 이 생애 동안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태어난 나라와 살아내야 했던 나라가 다르다는 사실이, 그것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정해진 사실이었다는 것이. 그러한 삶의 주인공들이 비단 기완자 뿐만 아니라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비통한 삶을 살아야 했다는 것이 그저 먹먹하게만 느껴진다.
결국은 타국에 있는 최영과 기황후의 현실이 그들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도 그들의 이야기 뒤에 있을 또 다른 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처연하게 글을 읽어내려 간 듯 하다.
고려 말은 나라의 주권을 잃고 원나라의 정책에 좌지우지 되었던 암흑의 세울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기황후가 공녀로 끌려간 지 2년 만인 1335년에 공녀 선발이 중단되었고, 공민왕 대에 원나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무기와 저폐를 보냈다는 기록은 그녀가 고려를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히 드러낸다. –본문
깊이감에 빠져 보기 보다는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것에 더욱 의존했던 소설이었기에 금새 읽기는 했으나 무언가 허망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팩트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팩션이라고는 하지만 간이 덜 된 듯한 이야기를 보면서 그래도 기황후라는 그녀의 삶을 원망만으로 바라보았던 시각을 조금 거둔 것으로 만족 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