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롭게 -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 사진공양집
일여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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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법정스님이 타계하신지 어언 3년이 지나가고 있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처음 접한 것은 <무소유를 통해서였는데 이미 가진 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손안에 쥐려고 하는 내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청빈한 삶의 지내고 계신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시간 이후 종교를 떠나서 법정스님의 책이나 강연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 안에는 촌철살인과 같은 말씀들이 담겨 있기에 뜨끔하기도 하고 절로 숙연해지기도 하면서 늘 스님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법정스님을 추모하고 길상사가 지닌 나눔의 정신을 알리는 데 더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스님처럼 덕이 높은 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부모님 덕이었습니다. 선친과 선비의 영전에 사진공양의 결과물인 이 책을 올립니다. –본문

<날마다 새롭게>라는 책 안에서는 법정스님의 모습은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두툼한 책의 두께만큼이나 방대한 사진과 단문이 어우러진 책을 보노라면 한창 동안이나 책에 푹 빠져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릴 만큼 사진 속에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었는데 일여스님의 모든 이들을 위한 염원이 이 책 안에 그득히 담겨 있기 때문인 듯 하다.

2008년 설법전 주불 점안식에서 반야심경을 봉송하시는 법정스님. 투병 중이셔서 그런지 매우 수척하고 피곤해 보이십니다. 수년간 스님을 뵈어왔지만 이토록 야윈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스님의 병세는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스님은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아마 나였다면, 부단히 이 부질 없는 목숨을 구해달라 혹은 이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 빌었을 테지만 법정스님의 모습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견고한 수도자로서 세상의 모든 근심들을 위한 합장일 듯한 이 사진은 그 사진 안의 모습만으로 겸허하게 만든다.

 

스님은 이분들과 종교를 초월해 깊은 교유를 나눴습니다. 길상사를 불교 냄새가 나지 않는 절로 가꾸는 것이 스님의 뜻이었습니다. (중략) 그래서인지 다른 종교의 지도자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본문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김수환추기경님과 법정스님의 모습을 보노라면 종교라는 틀을 뛰어 넘은 이분들의 모습에 종교 자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너와 나를 가르며 편을 나누는 것이 아닌 융합의 한 마당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씨익 웃게 되는 지금의 이 순간을 보노라면 이것이 진정한 세상의 사랑이 아닐까.

그냥 마당을 쓰시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마당에 줄을 그릴줄은 몰랐습니다. 스님의 줄 긋기는 경내에 흰눈이 소복이 내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지런한 저 줄들이 바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신발을 끌고 마당을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너무 부끄럽게 때문입니다.–본문

마당에 줄이 가 있는 이 사진을 보면서 언제고 나는 이토록 경건한 마음을 안고 비질을 해 본 적이 있나 싶었다. 눈을 치워야 하는 순간에도 펑펑 내리는 눈이 원망스러워서 대충 비질을 하다 말곤 했는데 이 사진 속의 스님을 보면 그 순간들이 마냥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내가 있던 흔적을 지우고서는 그 위에 또 다른 나를 채우는 모습이랄까. 스님은 비질을 하시는 매 순간 순간 이 하나에만 집중하며 하시는 동안 이 사진 속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보인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듯한 이 모습을 통해 마음속으로 이 결을 따라 사뿐사뿐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49재를 앞두고 있던 이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어머니가 가시니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길상사를 찾아 극락전 서쪽 영단의 향로에 향을 피웠습니다. -본문

누군가를 위해 향을 피운다는 것이, 그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이 의식 안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 것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얼마 전 인 듯 하다. 서서히 타 들어가는 불꽃이 향을 잠식하며 한 줄기 향을 공간 안에 퍼트려가는 순간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망자에 대한 염원과 이 모든 것들이 오롯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이 모든 태도가 경건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바람에 가슴 깊이 누르고 있는 그 슬픔까지. 이 짧은 동선 안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순간이 영원히 도래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라며 그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것보다는 언제나 곁에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니 말이다. 그래서 인지 어느 순간부터 향을 피우는 것이 참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 서글픔 또한 미련이나 내 스스로의 회한이겠지만 말이다.

가지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보며 미래를 보기 원한다면 현재의 나를 바라보라는 책 속의 이야기에 또 다시 겸허히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듯 하다. 사진이 수록된 책이라고 하여 금새 읽어 내려갈 줄 만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잡혀 있었나 보다.

종교의 색채나 세속에서 말하는 틀을 넘어서 그 누구에게도 따스함과 깊은 상념을 안겨줄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르's 추천목록

 

 

법정스님 숨결 / 변택주저

 

 

 

 

 

독서 기간 : 2013.12.21~12.2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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