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의 폐해로 인해 집을 잃고서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혹은 치료를 받다가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토록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경제의 주축이 되고 있는 그 미국이라는 곳에서, 한때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던 그 곳에서 지금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존재하고는 있으나 모든 병원이 아닌 지정된 병원에서만 이 혜택들을 누릴 수 있기에 제때에 치료를 받기도 힘든 이 상황에 빠져 있어 국민들이 내몰리고 있으나 정작 국가는 이 사태에 대해 뚜렷한 방안을 내 놓고 있지 못하다. 오바마케어라는 시스템의 도입을 꿈꾸고는 있으나 공화당에서는 반대하고 있으니 실로 이 문제가 언제 해결 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그나마 준수한 수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와의 접견하는데만 몇 백불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몇 천에서 몇 만 불을 지불해야 하는 그들의 시스템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미국에서 수술을 받는 것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와서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병을 고칠 수도 없는 그들이 안쓰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의료민영화의 이야기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우려가 들게 된다.

<내 아내에 대하여>라는 이 소설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미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케빈에 대하여>라는 소설로 소시오패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드러냈던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문체를 이번에야 말로 꼭 마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이 참혹한 현실이 그들의 현재라는 것에 가슴이 조려온다.

셰퍼드는 자신이 정부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적했다. 도로가 있지 않느냐. 다리가 있지 않느냐. 가로등과 공원이 있지 않느냐. 사실, 잭슨이 말하는 '보도'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정상적인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한 이런 명목상의 기반 시설은 주로 시 당국이 제곡하는 것이며, 값으로 치면 접시에 놏자마자 쓰러져버릴 정도로 얇은 파이 조각에 불과했다. 잭슨은 모든 시민이 똑같은 분담금을 항아리에 던져 넣으면 그들의 원초적인 필요를 모두 해결하고도 '큰돈'이 남는다고 빈번하게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조지 워싱턴이 생각한 바라고, '왕 따위에게 순종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본문

세퍼트의 잔고가 찍힌 숫자와 일자를 시작으로 그의 평범했던 일상이 시작된다. 3세계에서 시작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그는 참으로 치열하게 그의 삶을 살아왔다. 만물수리상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번창시켰던 그는 22년 동안 키웠던 회사를 매각해야만 했고 지금은 다시 직원으로 지내고 있다.

세퍼트는 진정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드러나기 전까지 말이다. 갑작스럽게 드리운 그의 아내인 글리니스의 복망중피종이라는 희귀병을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 어찌되었건 희귀병이라고 하더라고 일단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심정으로 그와 그의 아내는 수 많은 검사들과 비용을 치루고 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리고 밀려드는 고지서들은 그들의 목을 죄고 있었는데 경제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점점 좀 먹어 가고 있다. 문제는 한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동안 그들이 속해 있는 국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플리카는 눈을 비벼선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대꾸했다.

"가끔은 내가 정말 벌레인 것 같아. 난 왜 살아 있는 게 늘 그렇게 대단한 일이 되는지 모르겠어. 난 살아 있는게 엿 같은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살아 있다는 걸 참을 수가 없어. 엄마는 살고 싶으면 마음대로 살아. 테리 시아보는 차라리 잘된 거야."-본문

세퍼트의 가정 이외에 그의 이웃에 있는 잭슨의 집 역시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의 딸 플리카 역시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한 명 있으면 그 집안이 기우는 것은 금방이다, 라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고는 했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현실은 더욱 참혹했다.

플리카는 플리카대로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놓아버렸으며 캐럴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아이를 돌보는 사람으로서만 존재하고 있었고 이 집안의 가장인 잭슨은 밀려드는 청구서와 도박에 빠지며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져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다.

정반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술 후 한꺼번에 우르르 아내의 병상에 몰려왔던 두 사람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둘 다 전화는 가끔 했지만 그마저도 뜸해졌다. 그리 높지도 않았던 빈도수는 하필 언니가 잠깐 동안 '회복'되었다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저하게 줄었다. 적어도 헤티는 여전히 매일 전화를 했다. 본문

이 모든 문제들을 마주하다 보면 결국 이 문제는 오롯이 그 가정에게만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에 나 역시도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면서 꾸준히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오롯이 국가의 것이었으며 그 안에 살고 있는 병든 이들에게는 그 어떠한 혜택마저 돌아가지 않았다. 세퍼트의 가정 역시 그들 스스로 소송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이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야 했으니 말이다.

국가는 물론 그들의 가족들과 이웃들마저도 외면하고 있는 이 문제들. 아마 이것은 어느 순간 거리를 오가며 마주하던 노숙자들을 보며 어느 순간 그것이 익숙한 현실인 냥 지나치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지 내 아내에 대한 것이 아닌 내 국가의 자화상이 아닌지 무거운 마음이 가득하다.

독서 기간 : 2013.12.17~12.2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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