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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준비하는 과정의 설렘을 안고서는 이
책을 마주했다. 사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거나 풍경에 심취해 빠져있거나 때론 저녁에 혼자 누워
메모를 끄적거린 적은 있었다지만 ‘여행을 그린’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행을 그림으로 담다, 라는 이 책은 낭만적인 상상과 더불어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봄직한
것들이기에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설렜다.
그림에 대해 특별한 능력이 없기에 빈 도화지를 마주하면 언제나 막막함이
먼저 밀려들곤 했다. 내 눈에 담긴 이 아름다운 풍경을 굳이 내 손으로 어설프게 남기기 보다는 사진에
담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이 책 속의 소소하지만 꽤나 강력한 팁은 어서 빨리 나아가 그림을 한
장이라도 그려보고 싶게 한다.
지금부터 초보자가 알아야 할 여행 스케치의 세가지 노하우를 소개한다.
첫째, 실내 스케치부터 시작할 것!
둘째, 3분을 넘기지 말 것!
셋째, 미완성을 미완성으로 남길 것! –본문
어찌되었건 시작했다면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기에 첫
술에라도 배부르기 바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스케치는 어느 새 검은 얼룩과 선들만 자욱한 것이 되기
일쑤이고 간단히 그려보겠다는 바람은 시간을 잠식하여 나를 되려 괴롭히는 형상이 되고 만다. 즐거운
여행길에 잠시 휴식과 같은 스케치를 꿈꾸며 편 여백이 오히려 나를 잠식시키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저자는 철저히 상기 3가지 원칙을 지킬 것을 일러주고 있다.

여러 형태의 직육면체를 그리는 것에서부터 곡선이 담긴 가지를 그리고 지붕과 집을 채우는 연습을
하면서 그린 다는 것에 부담보다는 재미를 배우게 된다.
특히나 저자가 나무를 가지로 일년 내내 드로잉 한 부분의 이야기는 읽을수록 따스함이 느껴지면서 언젠가는 한 번 꼭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 몇 주는 그리기가 지겨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나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면서
변해가는 나무의 모습에서 야릇한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강좌가 끝난 뒤에도 나는 이따금 그
나무를 찾아 스케치를 하였고, 이른 봄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맑은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그릴 때에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본문

얼마나 잘 그리느냐의 결과가 아닌 내가 어떠한 사물이든 풍경을 바라보고 내 손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그것을 바라보고 그리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때는 몰랐던 부분들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책을 보며 여기저기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면서 잘 그리기 보다는 이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순간들이 그저 좋았던 것 같다. 잠시 동안의 여유를 안게 하는 이 스케치를
평소에도 종종 시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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