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를 대표하는 앨리스 먼로의 작품 중 < 미움 , 우정 , 구애 , 사랑 , 결혼 > 을 먼저 읽은 후 <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을 만나게 되었다 . 바로 직전에 읽었던 < 미움 , 우정 , 구애 , 사랑 , 결혼 > 역시 너무나 즐겁게 읽은 터라 이 소설 역시 기대를 가득 안고서 마주하게 되었는데 , 이 책 역시 그녀의 단편집을 모아둔 것들이었다 .
< 미움 , 우정 , 구애 , 사랑 , 결혼 > 이 무언가 따스하면서도 때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의 구성들이 있었다면 < 행복한 그림자의 춤 > 은 책의 제목과는 달리 행복하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렇다고 또 너무 무거워서 읽기 버겁다 , 이런 느낌이라기 보다는 뭔가 읽으면 읽을수록 먹먹해 지기도 하고 , 위트가 있는 듯 하지만 그 위트가 가볍지 않은 느낌이다 .
그를 그리워하고 찔찔거리면서ㅡ보낸 시간이 실제로 그와 함께한 시간보다 모르긴 해도 열 배는 더 많았다 . 마틴 생각은 내 마음을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주물렀고 , 얼마쯤 지나서는 급기야 내 의미마저 거역했다 . 만일 처음에 울며불며 야단스럽게 감정을 다 토해 냈더라면 , 아마도 그때쯤에는 가뿐하게 훌훌 털어냈을 것이다 . 그런데 궁상을 떨며 질질 끌다 보니 우울해졌고 한시도 편안하지 않았다 . – 본문
첫사랑의 실패 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 하룻강아지 치유법 > 은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왠지 모르게 아련함이 느껴졌다 . 주인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철저히 나를 망가트린 후에 그를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지게 된다 .
장례식장이라는 자리에서 갖춰야 할 예절에 어긋나지 않게 그는 살포시 회상에 젖은 듯한 미소를띠며 나를 건너다 보았다 .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그때 내가 보였던 열성이랄지 아니면 잠깐 매장당하다시피 했던 나의 비극에 그도 놀랐었다는 것을 알았다 . ( 중략 ) 나는 이제 어엿한 여인다 . 그 사람 자신의 비극을 밝히는 건 그에게 넘긴다 . – 본문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한 때는 연인이었던 이제는 다른 가정의 주인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데 , 그 당시의 마틴의 표정이 왠지 나에게 지어진 듯 해서 불쾌한 듯 하면서도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욘 없지 , 하면서 빠르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상황의 불편함을 참으로 적절하게 그녀는 꼬집어 표현을 해 놓은 듯 하다 . 한 때는 내 인생의 전부이자 그 사건만이 나에게 오롯이 남을 것만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흐려지는 기억 속에 묻혀 버리는 것들이 갑작스레 다시 등장하게 되는 그 느낌이란 .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
어쩌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이 지어낸 흥분 때문일지도 몰랐다 . 이를테면 마이라가 더할 나위 없이 인상 깊은 방법으로 우리 삶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모든 규칙과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었다 . 마치 마이라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처럼 우리는 멋대로 마이라에 관한 의논을 시작했고 , 마이라의 생일잔치는 곧 대의명분이 되었다 . – 본문
여하튼 이 안의 이야기들은 각기 각색의 특색을 , 그러면서도 꾸준히 회색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 나비의 나날 > 이라는 세일라의 이야기를 보면 동생 때문에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는 불연듯 어느 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다 . 7 월달이 마이라의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3 월 20 일에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방문 계획을 잡고 그날을 그녀의 생일이라 생각해서 파티를 열어줄 계획이다 . 나비 브로치를 그녀에게 선물했던 주인공은 차마 사람들에게 마이라와의 관계를 밝히기 보다는 조용히 , 그러나 은근히 마이라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 마이라에게 건내 준 생일 선물을 다시 받아 오면서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돌아선 그 이후 . 마이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란 작품 역시 ,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마살레스 선생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그 누구도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요즘 시대에 , 차마 그 사실을 피아노 선생님인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이는 없기에 , 그 마지막 연주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끝으로 찬란했던 파티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된다 .
회색조라는 느낌을 계속 안고 읽어서 인지 모르겠지만 , 확실히 내겐 < 미움 , 우정 , 구애 , 사랑 , 결혼 > 보다는 어두운 느낌으로 이 책이 남아 있기는 하다 . 이야기마다 뭔가 조금 더 서글프면서도 마냥 웃을 수 많은 없는 것들이 , 그럼에도 계속 다음 페이지를 읽게 만드는 것 같다 . 앨리스 먼로의 책을 이번 기회에 연달아 읽으면서 그녀만의 문체에 빠진 듯 한대 ,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