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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문학상은 고은 시인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기대에 불과하고 다른 나라의 작가에게 수상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아쉽다,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작가는 누구일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제 겨우 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 있어서는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했는데, '맨 부커상', '오 헨리 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의 영광까지 않은 그녀는 이미 유명했으며, 그녀의 작품은 늘 찬사를 받아왔다고 한다. 단편 작품에는 노벨 문학상의 영광이 빗겨가는 일이 대다수였다고 하는데, 당당히 그 상을 거머쥔, 그녀의 단편작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행복한 그림자 춤’을 함께 읽으며 이것이 노벨 문학상의 위엄이구나, 를 배워가고 있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알츠하이머병에 접어든 아내를 요양소에 보낸 남편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용을 담을 소설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소개글만으로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아닌 실제로, 나의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는 듯 했으니 말이다.
1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는 마지막 가시기 얼마 전, 세상과의 기억을 하나씩 놓고 계셨다. 언제나 정정하셨던 분이 하나씩 기억을 잃어가면서 삶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손녀로서 그 모습은 아련하면서도 삶 속에 이런 반전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안타깝게만 보였다.
손녀로서의 할아버지를 잃어가는 모습과 그 곁을 평생 지켜오시던 반려자가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다를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이가 변해가는 모습을,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만 하는, 세월 속에 받아 들여야만 하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이 나의 할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다 잃고 나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할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앉아 있죠.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울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이 무너져라 소리를 지르죠.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 거예요." -본문
모든 것을 함께 했던 이가 자신의 눈 가득 나를 담고서도 나를 못 알아보다니. 짝사랑도 이런 끔찍한 짝사랑이 없을 것이다.
부인이 요양원에서 만난 이를 그리워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그랜트는 부인을 위해서 그를 찾아 가게 된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인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괴로워하면서도 또 무엇이 그녀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는 그 모습은 보는 내내 왠지 애잔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은 어렸을 때 이름 획수를 가지고 하던 놀이 중 하나였다. 새비서와 이디스의 장난으로 시작된 잘못된 편지의 발송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는다.
이 책을 통해서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뭐랄까. 불필요한 요소들은 과감히 제외하고 나서 정말 필요한 내용들만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서도 이 사건의 시작이었던 맥컬리씨는 마지막에 등장은 하는데 그는 2년 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의 장례식장에 함께 나타난 켄 부드로와 아내인 즈해너의 등장. 이것으로 이 소설의 결말은 암시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의 그녀의 서술은 짧은 이야기 속에 강한 울림은 남게 한다. 이와 함께 읽고 있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또한 기대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