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일어났으나 너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 너에게는 희미했으나 나에게는 또렷했던 일. 나에게는 무거웠으나 너에게는 가벼웠던 일. 너에게는 잊혔으나 나에게는 문신으로 새겨진.
그 과거의 언젠가는 단 하루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짜인 날들의 씨줄과 날줄 속에 스며들어 미래의 언젠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를 테면 그 언젠가는 언제였던가. 배들로 항구로 돌아오고 사랑은 날개를 퍼덕이고 내 앞에 당신이 있었던. -본문
감성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버거운 것들이 아닌, 읽을수록 진한 느낌이 베어 나오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밤 늦게 시작된 독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이 책을 안고 있게 한다.
한 때는 가슴 시린 아픔이었을 이야기마저도 그는 참으로 덤덤하지만 그 때의 아픔들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미 지나쳐버린 과거이지만 내게는 어제의 생채기처럼 남아있는 일을 그를 문신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눈 앞에 자리하고 있을 그를 다시 마주한 느낌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번째 초상화를 그렸다. 너를 다 그리진 못했지만 너의 일부를, 혹은 너와 나눠 가진 시간의 아주 사소한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약속을 그린 거라고 믿었다. 언젠가 내가 너를 잘 그릴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붙잡고 서투르게, 서투르게. 그리하여 그 질문, '내가 너를 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당분간 의문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어딘가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이렇게 많다. 그래서 미안하고, 그래서 고맙다. -본문
3차원 속 세계를 스케치북에 처음 그리게 된 날, 그는 그의 지인을 조심스레, 부끄러운 손길로 그리고 있었다. 헛헛했을 그 손길이 닿은 그 결과물을 보고서, '내가 있네'라고 이야기 해주는 그 지인이 있어서 훈훈했던 그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그들의 하루가 나에게까지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다.
만약 올라가는 모든 것들과 내려가는 모든 것들이 온전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쉽게 지쳐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별 재미도 없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온전한 것들 사이에 반음이 끼어듦으로써 '완전'해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사실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본문
피아노 음계에서마저도 하나의 인생을 읽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밤 11시가 훌쩍 넘은 새벽 1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을에서 시작된 여름까지의 여정 동안에 하루하루의 숫자가 담고 있던 의미를 넘어선 이야기들이 참 포근하게만 느껴진다.
오늘의 하루는 다 지나가고 내일의 하루가 다가오는 시간 동안, 그와 함께 걷다 보면 소담스러운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닐 것만 같다. 한 권을 금새 읽어버린 것이 아쉬울 만큼,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