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그 전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이미 우리나라에 번역이 된 적이 있다고는 하나, 저작권사와 정식으로 협의되어 판권을 얻어 발간된 것은 이 비행공포가 처음이라고 한다. 1973년도에 발간되었다는 이 작품이 21세기에 이 작품을 읽는 나로서도 어쩜!’이라며 숨죽인 쉼 호흡의 연속이 이어지고 준비 운동을 하기도 전에 풍랑이 거친 바다에 수영을 하라며 떠미는 듯이 밀려드는 외설적인 단어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지금도 이러할진대 당시에는 희대의 문제의 작품으로 비추어졌을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에리카 종의 말마따나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을 보냈다는 그녀의 말은 굳이 상상해보지 않아도 이미 겪은 일들처럼 아스라히 그려지니 말이다.

 이 두터운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소설이라곤 하지만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것에서 이 대담한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야!’ 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녀의 당당함을 보면서 나는 경외로움이 느껴졌다. 누군가 한 번쯤은 자신의 상상의 나래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음탕한 세계를 꿈꾼 적이 있었겠지만 자신은 아닌 듯 고고한 백조인 것처럼, 블랙 스완을 숨기고 사는 것이 우리네 미덕이며 도덕적 관념에 합당한 것이라 믿고 있는 우리에게 그녀는 금기 시 되어 왔던 모든 것들을 거침 없이 쏟아 내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막고 감추어 두려 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봇물 터지듯   넘쳐 흐르는 지금, 이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년간의 결혼생활은 그런 욕망에 좀이 쑤시게 만들었다. 남자에 대해 좀이 쑤시고 고독에 대해 좀이 쑤시고 섹스에 대해 좀이 쑤시고 은둔한 삶에 대해 좀이 쑤신다. 나의 갈증이 서로 상충된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나의 갈증이 미국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것 역시 상황을 악화시킨다. 커플의 반쪽이 되는 것 외의 모든 삶의 방식은 미국에서 하나의 이단이다. –본문

 읽는 내내 나는 드라마와 영화로 대 성공을 거둔 섹스 앤더 시티속의 사만다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를 접하게 된 것은 2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금기 시 하던 터라, 이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이야기를 하는 나 역시도 때론 밝히는 여자라는 주홍글씨를 드러내는 것이라 치부를 받곤 했었다. 어찌되었건 그들이 섹스라는 단어에 치중하여 나를 바라본다 한들 나는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보았기에 타인들의 잣대로 드리워진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 드라마에 더 빠져 보곤 했었다.

 여하튼 이 소설 속의 이사도라와 섹스 앤더 시티의 사만드는 데칼코마니와 같이 그 둘이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여자라면 응당 요구 되어지는 틀에 벗어난, 마치 남자들처럼 섹스를 즐기는 이들의 일탈을 보노라면 자유와 욕망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그들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욕망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에 감복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참으로 우울한 그림이다. 모든 결혼이 그렇지는 않다. 순진했던 사춘기 시절 꿈꾸었던 결혼을 생각해보자. 그때만 해도 비어트리스와 시드니 웨브,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출프가 완벽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믿었다. 그때 내가 뭘 알았던가. 나는 완벽한 상호의존 관계동반자적 관계그리고 동등함을 원했다. 내가 식탁을 닦을 때 그가 신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있을 줄 알았던가? 얼린 오렌지 주스를 섞어달라고 부탁하면 서툰 척 연기할 줄 알았던가? 자기 친구를 데려오면 내가 시중들어주길 기대하면서 내 친구를 데려오면 부루퉁해서 다른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가? 버다드 쇼와 버지니아 울프와 웨브 부부의 작품을 읽는 이상주의자 사춘기 소녀가 무얼 알았겠는가? –본문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이후 그 두 번째의 새로운 시작을 들어서기 위해서 이사도라는 정신분석에 의존하게 된다. 그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 아니 지극히 보편적인 평범하다는 것을 위해서 이 한 가닥의 희망을 끈을 잡은 것으로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어머니는 이사도라에게 여자는 무릇 남자에게 값비싼 보석처럼 보여야 손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그녀는 그러한 사회 통념 속에서 만들어 놓은 보편화된 가치들을 거부하려 한다. 왜 여성은 언제나 남자의 잣대 위에서 판단 되어 져야 하며 남자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용인되는 외도를 여자에게는 금기 시 되는지 등에 대한 복잡한 고뇌들 속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으로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는 그녀에게 아픔만을 가져다 주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첫 번째 결혼은 실패라는 고배를 마시고 나서 그의 두 번째 남편인 베넷과 함께 시작된 제 2의 인생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의 안락함과 열정적인 사랑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보인다. 괜찮아 질 것이라 믿었던 비행기의 탑승 공포는 오히려 더 짙어 지듯이, 별 다른 문제가 없던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결혼 관계에 있어서도 또 다른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과 함께 탑승한 비행이 내에서 지퍼 터지는 섹스에 대한 환상을 안게 되고 이러한 환상은 에이드리언을 마주하게 되면서 현실이 된다.

 그때 난 무얼 찾고 있었을까? 왜 그토록 불안했을까? 그들과 깊이 사귀지 못했던 건 아마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남자는 계속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결국엔 내가 실망하고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남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열여섯 살이 되던 그때부터 내가 그 남자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단 거였다. –본문

 이사도라를 보면 누군가는 미쳤다, 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수치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모습을 한 그녀는 결혼한 여자로서의 정숙함이라는 통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힐난을 퍼붓지는 않겠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이 장면들은 단지 그 주체가 남성과 여성이 바뀌어 있다는 것만으로 불쾌감이 밀려드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이러한 사건들이 익숙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불륜이나 외도에 대해서 찬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사도라의 일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꿈꾸는 100% 나만을 위한 왕자님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를 관람하는 시청자의 입장과 같이 전지적 시점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내 모든 것을 알고 나만을 위해 존재해 줄 수 있겠는가. 다만 이사도라는 이 속에서 만큼은 남자라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제외하고 오롯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그러할 때마다 그녀는 글을 쓰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내던져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나만의 삶이라는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남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선뜻 그들을 떠나지 못했다. 늘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우겼다. 내가 겁쟁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의지의 마비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행독하는 대신 앉아서 내 분노를 글로 썼다. 베넷을 꺼난 건 내게 최초의 독립적인 결단이었지만 그 결단에도 부분적으로는 에이드리언과 그를 향한 나의 성적 집착이 작용했다. –본문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지는 단어들에 빠져서 보면 이 책은 그야말로 음란한 책에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불경스럽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미친 이야기들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돌려서 그 이외의 것들을 바라보자면 이 속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섹스 앤더 시티의 섹스에만 초점을 마주치 않고 보다 보면 그들의 고민과 또 그 나름대로의 삶의 애환을 알 수 있듯이 비행공포를 통해서 이사도라처럼 살아라, 가 아닌 이사도라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조명되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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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앤더시티 / 캔디스 부시넬저

 

 

 

독서 기간 : 2013.11.06~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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