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가 달달할 것만 같은, 매혹적인 표지와 제목에 반하여 이 책에 접근한다면 엄청난 오산이 될 것이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로 시점이 바뀌게 되는 이 소설은 그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가진 '단아름다운'과 하루하루의 삶이 버겁기만 한 '박이경'과의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5개월의 시간차를 두고서 미래과 과거를 오가는 사이 그녀들은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자세에서 이제는 점차 타인의 삶을 쥐락펴락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읽어 내려갈 수록 끔찍한 인간의 본상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이 또한 돌연한 기적일 터였다. 만약 그녀에게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어떨까. 그래도 명 짦은 미녀를 택할까, 아니면 이류 대학 졸업반에 특수청소나 다니는 추녀의 삶을 택할 수도 있을까. 천국의 이십 년이냐, 지옥의 팔십 년이냐.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임을 깨닫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본문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진 타인의 삶으로 하루만 살아보는 것. 차마 꿈꿀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들이 일상으로 들어가 보는 것. 예를 들어 전지현이나 김태희나, 그녀들의 삶으로 하루만 살아보면 좋겠다, 라는 허무맹랑하지만 한 번쯤 꿈꾸는 그것.
이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의 꿈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과연 당신에게 그러한 기회에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녀들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그럼에도 현재의 나로 살고 싶은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이자 정점에 치닫게 하는 요소이다.
한 여자는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입고 어디로 머리를 하러 갈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엄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그녀는 그저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단아름다운'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날 수록 들어나는 몸에 어버린 학대의 잔인한 고통은 그녀를 또 다른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녀와는 전혀 겹칠만한 교집합 따위는 없을 것만 같은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박이경은 하루하루를 겨우 살고 있는, 살해 현장을 청소하며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하는, 허황된 로또의 꿈으로 아스라히 사라져버린 가정을 살리기 위해 꿋꿋이 살고 있다.
그보다 가난을 경멸하는 그녀의 갈퀴 같은 말에 가슴이 쓰렸다. 과연 가난이 노력만으로 극복 가능한 것인가 묻고 싶었다. 매달 돌려 막기로 당신 통신의 이자를 보태 주는 수많은 채무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따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의 뺨을 갈겨주고 싶었다. 마음에 날이 바짝 서자, 문득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처,천박해!" -본문
단명할 운명이라던 박이경과 가을이의 생명의 교환 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질투에 의해 고약하게 꼬여버린 가을이와 단아름다운과의 치정때무이었을까. 한 번 꼬여버린 이 실타래를 더 이상 풀어버릴 수도 없게 엉켜버렸으며 이 실타래를 놓고서 또 이해관계의 집단들이 만들어가는 후반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악마들의 레이스를 보는 듯 하다.
온갖 비리와 편법으로 알랄하게 돈을 그러모은 남사장, 나와 다운을 건조실에 가두고 죽음을 방조한 왕태봉, 죄책감 없이 손녀의 시신을 팔아 치우고, 살인을 부추긴 늙은 염낭거미 노파, 문득 장례식장에서 만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이 자리에 부모님이 옆에 있었다면 옳은 것보다 살아남는 방법을 택하려고 응원했을 것이다. -본문
초반의 서로의 삶에 대해 꿈을 통해서 오가며 공유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현상이라며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후반에 가서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마저 저 버릴 정도로 잔혹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마지막까지도 살아남은 자는 누구이며 과연 누구의 모습으로 살게 될 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이 소설 앞에서, 이럼에도 당신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탐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