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을 보면서 왜 '칸트의 집'일까, 라는 물음표를 안고 책을 펼쳐 보았다. 그 어디에도 그다지 철학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따스하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 이 이야기 속에서 대체 왜 칸트, 라는 인물을 끌어 들인 걸까? 라는 의문은 금새 풀리게 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산책을 즐겼다는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 때문에 그의 산책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맞췄다고 한다.
이전의 나는 꿈을 꾸지 않고 형은 환상을 품지 않는 아이였다. 칸트는 우리에게 꿈과 환상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내가 만난 두 명의 칸트에 관한 이야기다. -본문
칸트와 같이 매일 동일한 시간에 마을을 산책하는 소장님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 그 형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형을 지켜야만 하는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있는 각각의 자신들의 만들어 놓은 집안에 갇혀 있는 생활을 하듯, 소통의 단절을 안고서 그들만의 삶을 안고 있었다면 이 시간이 흐를 수록 이들은 서로의 집을 타인들을 향해 열어두고 있었다.
왜 이해는 늘 형에게만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칸트의 말은 틀렸다. 세상에 가득 찬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불공평이다. 난 늘 형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니 부당한 대우라면 형이 훨씬 많이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본문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 조금 다른 형을 두고 있는 나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형과 동생의 모습이 아닌, 동생이지만 언제나 형에게 양보 해야 하고 형을 돌봐야 하는 그 모습에 지쳐 짜증을 내기도 한다. 형이 아닌 '걔는' 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신이 처해있는 현재에 대해 투정을 부리고는 있지만 새로 전학간 교실에서 혹시나 형에게 누군가가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면서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간 이 두 형제를 바라보는 세상의 녹록치 않던 눈길과 행동이 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던 것일까, 라는 반증이 더해져 안타깝기만 했다. 틀림이 아닌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병신, 이라는 말을 내뱉는 어른들이야 말로 그들만의 불행한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아닐까. 왜 상처는 이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한탄과 함께 계속 책장을 넘겨 본다.
가끔 궁금해지곤 했어요. 형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중략) 형이 만든 세상 외에, 그 바깥쪽은 형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형이 내가 누군지나 알까요? 내가 동생이고, 동생이란 게 어떤 관계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까요? 내가 죽는다고 해도 형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예요. 조금도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슬퍼요.." -본문
칸트는 열무와 나무 형제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집을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언제나 보이는 것만을 스케치북에 그리던 나무에게는 자신이 갖고 싶은, 살고 싶은 집을 그리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개똥철학이라고 믿는 나무는 무덤과도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칸트의 말을 받아들 일 수가 없다.
이토록 뭔가 쉽지 않은 그들간의 조우는 시간의 힘 덕분일까, 아니면 그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을 위한 집 에서 틀어박혀 세상과의 소통을 잊고 있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칸트, 나무와 열무 형제는 점차 그 간극이 줄어들게 되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홀로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칸트 앞에 나타난 이 두 형제는 처음에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을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방문 하게 된 이들의 관계는 그저 머물러만 가는 손님이 아닌 이제 공간을 함께 나누게 되는 이들이 되어간다.
오롯이 혼자만이 있던 공간에 타인을 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것을 공유하면서 이뤄지는 소통의 장. 그것이야 말로 칸트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으며 아이들이 칸트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칸트는 마지막 순간, 모두를 위한 공간은 물론, 열무와 나무와 함께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아담한 공간을 남겨둔 것일 게다.
아마도 형은 어떤 것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 된다는 말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어떤 것이 끝난 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형이 알고 있었던 걸까? 형이 그 무언가가 계속되느 ㄴ것을 바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건 나도 그랬다. -본문
자폐, 서번트 증후군 등의 단어를 단 한번도 등장시키지 않았다는 저자의 의도를 들으면서 그 작은 배려가 이 이야기들이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우리 개개인들 역시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자신에 대해서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익숙할 테지만 오히려 그것이 정상인 냥 행동하는 것이 더욱 병폐가 아닐까.
남들과 조금 소통이 어렵고 자신의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이들에게 자폐 혹은 서번트 증후군이란 이름을 명명하며 그들에게 병명을 내리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는 과연 정상이라는 그 범주 안에 있는 것일까, 라는 것과 좀 더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라는 반성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