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새 14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반려견인 똘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바라보고 있다. 그 이전에도 강아지를 키우기는 했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함께 하는 강아지는 똘이가 처음이다. 집을 나가 버린 고양이나, 강아지들은 길을 잃어서였는지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안타깝게도 그들의 마지막은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러한 반려견에 대한 나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는데 그전에는 그저 강아지를 키운다, 라는 의미였다면 요새는 키운다는 의미보다는 ‘함께한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로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지곤 한다. 물론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라고 핀잔을 주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동물이 살기 좋은 곳이 사람에게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내 곁에 있는 반려견에게도 최대한 좋은 것들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주는 만큼 나 역시도 행복해 지니 말이다. 하지만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내는 개들에게 있어서도 경기 불황은 가히 가혹할 만한 시련이 되곤 한다. 사람조차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키우던 개를 버리거나 혹은 연인간에 키우기로 했던 강아지는 이별의 도래로 함께 갈 곳이 없어지기에 유기견 센터로 보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기사를 보곤 하는데 보호 센터 조차도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이들의 최후는 결국 안락사로 마무리 되는 실정이다. 개들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일지 모르지만 대부분 동물보호소들의 살생률은 여전히 90퍼센트에 달한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스의 동물보호소들은 매달 천 마리 이상의 개를 안락사시키는데, 조이는 이 수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본문 이러한 일들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는 현상인가보다. 지구 반대편인 곳에서도 버려지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으며, 여자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유기견을 보호하는 일에 뛰어들게 된 저자는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의 기록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 냈다. 범죄의 소굴이라 불리는 치마요로 그들의 거처를 옮기기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수중에 있는 돈과 현재 함께하고 있는 개들이 살 수 있는 곳을 고르다 보니 여건에 맞춰서 있을 수 있는 곳은 치마요 뿐이었다. 사람와 동물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유일하게 허락된 장소. 그 곳에서 이들의 따뜻하고 슬픈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히스라는 남자는 새로 시행된 벌률하에 구속된 최초의 인물이었는데, 고양이를 때려 죽인 사유로 10일간의 구류 및 25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30년 후, 뉴욕의 개 포획꾼들은 여전히 하루 300여마리의 길 잃은 개들을 찾아다니고, 우리에 가두고, 이스트 강에 내던졌다. 이 포획꾼들은 시간이 아니라 마리당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 개를 학대하는 사태가 빈번해졌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도 수시로 사라졌다. –본문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새로운 종들이 태어나고 그렇게 탄생된 개들은 인간의 호기심이 다하게 되는 순간 또 다시 거리에 내몰리고 있었다. 인간은 경제 체제 안에서 돈이라는 대가를 주고서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것들 중 동물 역시도 매매의 대상 중 하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물을 키우곤 하는데, 하나의 물품처럼 호기심에 구매하고 실증 나면 버리거나 교체하는 부품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이기에 그들을 너무 쉽게 구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전에 본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야생동물의 외모에 매료되어 불법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 그들의 외향에만 호기심을 가졌던 이들은 야생동물의 실체를 보고서는 감당이 안 된다 판단하여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한 순간의 욕망으로 지갑을 여는, 이 가벼운 구매욕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편의용품이 늘어날수록 애완동물 수도 늘어났고, 애완동물 수가 많아질수록 미국 동물학대방지협회의 일도 많아졌다. –본문 이렇게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그들 중 새로운 주인을 만나 제 2의 삶을 보내는 이들은 가히 행운이 깃든 녀석들이라고 불리는데, 베이지색 개들은 선택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순종이나 귀여운 강아지들만이 겨우 선택된다고 한다. 특히나 검은색 털을 가진 개들의 경우 그 누구에게도 선택 받지 못한 가능성이 크다고 하며,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지능이 낮은 개들은 안락사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개 한마리를 입양하는 문제는 개들 자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인간들의 편견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본문 오티스가 기젯에게 베푸는 행동을 보면서 인간보다 더 이타적인 개들의 유대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영장류로 분류되는 침팬지들은 개인주의가 강한 반면 그들보다 지능은 좀 떨어진다고 하는 늑대들의 경우 무리 안의 모든 개체간의 교류와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배워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모든 것들을 군림하며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조금 더 지능이 뛰어나고 그리하여 지금 이 곳을 우리 것 인 냥 쓰고 살고는 있다지만,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우리만의 것일까? 또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생명을 쥐락펴락 하는 것을 당연한 일일까?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버려진 개들을 돌보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을 보면서 처음의 시작부터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버림받아야 하는 동물들과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인간들의 역할도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문의 초입에도 언급했듯이 동물이 행복한 곳이야 말로 인간 역시 행복한 곳일 게다. 안일한 짧은 판단으로 모두에게 상처가 될 애완동물의 구매가 아닌, 반려동물로서 그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모두에게 행복한 동행만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일 우리가 동물 복지에 대해 윤리적 결정을 내리기 위한 근거로서 동물과 인간의 유사성을 찾고 있다면, 잠깐 멈추어서 특별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개와 인간, 그리고 어쩌면 다른 무수한 종들을 모두 똑같이 신성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