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그림과 제목 아래 박완서 라는 이름 3박자가 어우러진 표지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무언가 따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본문

 

넘기자마자 마주하는 글귀를 보면서 이 책을 책장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읽어보겠구나, 라는 생각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확신으로 굳어지며,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본 책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왕성하게 교감을 하고 있다. 봄이 얼마나 잔인한 계절이라는 걸 노부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봄엔 늘 배고팠다. 그들이 어렸을 적에도 그러하였고 젊었을 적에도 그러하였다. 지금 그들은 끼니 걱정 안 한 지 오래되었고 시골에 살지만 텔레비전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보일러도 있다. 그러나 편리한 것들 때문에 나무와 풀과 새와 나비와 교감하는 능력을 잃었다.잃은 줄도 모르게 잃었던 것을 봄기운이 불러냈나 보다-본문

 

초반에는 노부부의 평이한 나날에 대해 그리고 있다. 어릴 적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 그 따스한 정감이 고스란히 글로 담겨 있는데, 읽는 내내 씨익 웃음이 나기도 하고, 오랜 세월이 농축되어 글 안에 담겨 있는 그의 이야기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이 버겁기는 커녕 편안하게만 다가왔다.

산길에서 잊어버린 열쇠를 주어다가 잘 보이는 나무 위에 올려주는 이의 배려를 보며 여전히 삶은 훈훈한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내려오는 산길에서의 오히려 힘이 더 들고 쉽지 않다는 것에서 '내려놓음'의 진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시간을 먼저 지나간 先生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었다.

 

등산에 있어서만 아니라 권력이나 명예, 인기에 있어서도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 품위 있기가 더 어렵다는 걸 전직 권력자들의 언행을 보면서 곰곰이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본문

 

영화 은교에서 '너희들의 젊음이 축복이 아니듯 나의 늙음이 죄가 아니다.'라는 대사가 오버랩 되어 스쳐 지나간다. 老人에 대해 갖게 되는 은연 중의 편견 아닌 편견.주름 가득한 그네들의 삶의 그림자만큼이나 쌓여진 지혜에 대한 존경보다는 연민이, 연민보다는 내게는 오지 않을 제 3의 세계를 사는 듯한 인물로서 그들을 바라보았던 나의 추악한 본색이 그의 책을 읽는 동안 그러한 망상을 품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청년과 중년을 겪고 노년을 겪고 나서 노년 문학을 할 수 있기에 노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노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노년 문학에만 초점을 맞추어 집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당당한 고백 앞에서 노년의 삶에 대해서만 담고 있을 것이라는 이 책의 섣부른 오해를 후반에 되어서야 제대로 방향을 잡고 이해한 셈이었다. -본문

박완서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올해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따스하고 따뜻했던 책. 이 책을 한동안 곁에 두고 계속 보고 싶을 것 같다. 푸근했던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자꾸 보고 싶은 책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 나이까지 견디어온 그런 고비고비를 생각하면 먹은 나이가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러한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자질때도 있는 것이다. -본문

독서 기간 : 2013.09.17~09.20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