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마저도 카톡으로 고하는 요즘 시대에,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것도 ‘듣다’ 라는 행위에 대해 한 권의 책이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책이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일까? 란 의문이 무색하게도 2012년도에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책이라고 한다.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사무실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도 대화 대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자 메시지와 실제 대화는 엄연히 다르다. –본문
생각해보면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SNS이나 메신저 등을 통해서 끊임 없이 누군가와 소통을 하려고는 하고 있지만 그 소통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매개체이고 일방적인 나의 외침이다. 1:1 혹은 1:다수를 두고 하는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것이 아닌 글로서 불특정 다수들에게 향한 고백이 그득한 일상인 요즘에 왜 저자는 듣는 것을 강조하고 100만부 이상의 책은 사람들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간 것일까. 오늘도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서 책을 펼치는 나는 역시나 또 풍덩 하고 책에 빠져 들고 있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인터뷰어인 저자는 20여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들을 만나며 그녀가 깨달은 인터뷰어의 자세, 그러니까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그 대화를 듣는, 화자와 청자의 입장에 놓였던 자신의 경험을 농축하여 이 책 안에 담아놓고 있었다.
그의 대담 칼럼은 절묘하게 파고드는 묘미가 있어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업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략) 그래도 난 전임자의 인터뷰 스타일을 동경했고, 나 역시 그런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내 능력 밖이다 싶어 편집장에게 직접 하소연했다. –본문
그녀가 초반에 고민을 했듯이 나 역시도 어느 자리에서 대화를 해야 하는 때에는 ‘어떻게 하면 말을 조리 있게 잘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들을 수 있을까?’ 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인간의 귀가 2개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에 더 집중하라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는 말하는 것에 대해서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을 한다, 는 것은 자의에 의해서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행태라면 듣는다, 라는 것은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이뤄지는 수동적인 행위이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귀로 전해져 오는 소리에 구태여 열심히 들어봐야지! 라는 결심까지 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들은 경우는 별로 없는 듯 하다.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고 싶어 안달 났던 경우는 별로 없었으니 나는 듣기에 중요성에 대해서 그다지 인지하지 못하고 그 필요성에 대해 못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는 실전에서 인터뷰어이자 한 인간을 마주한 또 다른 인간으로서 대화에 있어서의 경청의 힘을 오롯이 체감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다정한 태도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그것은 내 생각을 전달하려 하거나,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듣는 것이다. 조용히 ‘난 당신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있어요.’ 또는 ‘더 듣고 싶어요.’ 라는 신호를 보내라. 그리하면 상대는 마음속에 감춰둔 생각을 알아서 언어라는 형태로 끄집어낸다. –본문
일방적인 나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교감을 한다는 신호. 멍하니 있어도 흘러 들어오는 이야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쉬이 판가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나는 그 동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일까, 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는 행위 속에서 나는 정말 나의 이야기만 속사포처럼 내 뱉으며 시간을 때우고만 있었던 것 같아, 괜히 씁쓸해지곤 한다. 그들 역시 진실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서 내가 마주한 것이 아니라 집어 든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는 노래방 비매너 인의 모습을 한 화자이기를 바랐던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칫 잘 들어어야만 한다, 라는 하나의 이야기로는 지루해 지지 않을까? 라는 염려와는 달리 그녀는 그녀의 경험을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로 들려주고 있기에, 즐겁게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갔다. 특히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서 나의 시각에 갇혀 상대방을 쉬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데 이는 볼 때마다 아로새겨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교성을 갖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무례를 범할 수 있다. 그저 싹싹하게 굴기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리라 착각하면 나처럼 큰 실수를 자초 할 수 있다. –본문
요즘 들어 통화 할때나 이야기를 할 때, 예전보다 조금 더 집중하려는 내 모습이 보인다면 나는 무조건 이 책 덕분이라고 이야기 할 참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닐테니,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