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다녀온 남해 여행에서 함께 간 이가 나에게 말했다. '어째 편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라고 말이다. 그토록 꿈꿔 왔던 여름 휴가였는데 나는 그 염원해 왔던 순간을 철저히 즐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즐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더 좋은 것들을 먹고 보고자 검색의 세계에 빠져 실존하고 있던 것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찾는 것은 나의 몸은 이 곳에 묶여 있지만 마음만은 책을 통해서 그 곳에 함께 저자와 걷기 위함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 본다. 비행기 티켓을 쥐어 들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실제 그 장소에 있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책 한 권을 통해서 그 곳에 가볼 수 있기에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벌써 100페이지를 훌쩍 넘어서도 있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 진 건가?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아뿔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 책 마저도 남해에서와 같이 그저 글만 빠르게 읽어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 많은 페이지에 할애되어 있는 사진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녹아 있는 글을 본 것이 아니라, 정말 책으로, 책 속에 있는 글자들만 휘리릭 읽어 내려간 것이다. 그제서야 이제는 책마저도 이렇게 읽어 내려가는구나, 라는 서글픔 속에서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읽기, 아니 보기 시작한 책은 꽤나 오랜 시간 사진과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물론 무서울 때도 있다. 가령 깊은 밤에 도착하는 낯선 도시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얼마나 더 가야 뭐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만큼 광할하게 느껴지고,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이빨을 감추고 으르렁거리는 늑대처럼 느껴진다. -본문 크로아티아,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왠지 낯설음이 먼저 다가오는 이 곳은 저자가 여기로 떠난다고 할 때만 해도 그의 지인들 역시 '거긴 어디야?'라며 재차 물었다고 하니 익숙한 곳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또 바꾸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곳이 여행지로서는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검색만 하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보다는 생경한 듯 한 곳이 여행자로서는 더 반가운 풍경일 것이다. 물론 그 만큼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도 공존하기는 하겠지만. 여행을 떠나는 동안 그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가게 된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무 넓지 않는 곳을 여행지로 선정한다는 그는,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웬만해서는 그리 넓지 않은 곳을 선택한다고 하는데 그 말마따나 그는 크로아티아 전부를 누비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상념이 많아지나 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마주하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어느 새 익숙해져서 일상으로 느껴지고 그러면서 그 풍경에 취해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점점 상념으로 채워지는 순간. 그는 그 순간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왔다. 방금 전처럼 사고가 있을 뻔하면, 혼자 여행을 떠나오는 것에 대해 다시 행각해보게 된다. (중략) 그만큼 혼자만의 여행은 비어 있다. 그 빈 공간은 거니는 걸음걸음마다 떠오르는 수 많은 상념들로 채워진다. 사랑, 미련이기도 하고, 이별, 아픔이기도 한다. 후회와 반성을 하기도 하고, 또는 수많은 계획이 세워지기도 한다. 얼토당토않은 단편의 줄거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본문 크로아티아, 하면 가장 많이들 간다는 플리트비체를 이 책에서 처음 만난 순간, '아, 이곳은 무조건 가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황홀하면서도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이 곳이 그에게는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했단다. 하지만 어느 선배처럼 나는 그에게 '대체 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나?' 라며 그를 타박하는 것을 그만 두기로 했다. 소소한 장면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회오리처럼 엄청난 것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그저 일상 속 하나의 모습으로 지나칠 수 있듯이 나에게는 강한 임팩트를 남긴 플리트비체가 그에게는 그저 그런 공간이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은 오롯이 그의 여행이었고 나는 그의 여행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니, 나는 이 책을 통해 나대로 그는 그곳에서 느낀 그대로의 여행을 즐긴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맛집이라도 내겐 맛집이 아닐 수 있다. 가령, 아무리 맛있는 스테이크 식당이라도 그곳의 음식은 채식주의자에겐 벽화처럼 보일 뿐이다. -본문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크로아티아에 대해서, 이제는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그 목적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그의 생각과 함께 내가 공감하는 것들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짧은 여행으로 목적 달성은 물론 두둑한 덤까지 얻어 가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