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라는 단어가 낯설어서일까. 나는 처음에 제목을 보자마자 파괴, 인줄만 알았다. 무언가를 부시고 흐트러트리는 듯한 행위이자 결과에 대한 것이 이 책의 제목인가 했는데 그 이름도 낯선, ‘파과’란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이 파과의 뜻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주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파과는 어떠한 것이느냐고 묻고 있다. 과일의 형체가 알아볼 수 없게 시들어버린 의미인지, 아니면 65세 이상의 노인을 말하는 것인지. 아마도 이 두 가지 모두가 이 소설 속 주인공을 의미하는 듯 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는 홀대를 받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늘어난 딸의 존재는 그 부모에게 부담이 되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친척집에 맡겨 지지만 꿈 같은 그녀의 나날은 귀금속을 하나 걸어보려 했던 소녀의 욕망으로 인해 기회조차 사그러들고 만다.
그리고 만난 류와의 인연. 이 인연의 시작은 과연 좋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살기 위한 마지막 동아줄이었지만 이 인연으로 시작된 방역이라는 그녀의 직업은 ‘투우’와의 뜻밖의 인연으로 엮이며 또 다시 어둠으로 치닫게 된다.
한 미군의 습격으로부터 살기 위해 시작된 그녀의 방역 작업은, 물론 첫 번째는 다분히 정당방위이기는 했지만, 그 때부터 방역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한 그녀를 알아본 류를 만나면서부터 손톱이라는 이름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소질있네.” 라는 말로 시작된 그녀는 삶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증오와 원한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여주는 킬러, 라는 단어 대신에 선택된 방역.
그 누구에게는 가족이자 소중한 친구이며 선후배일 수 있는 한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사라져야만 하는 해충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한 방역 작업을 해주는 이들이 바로 류와 손톱이라 불리는 그녀였는데,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이 자들이 세상에 사라져야 하는 존재들인가, 아니면 그러한 사주를 하는 이들이 사라져야 하는 자들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방역자의 모습을 가진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인지, 묻어 놓았던 감성들이 되살아 나는 것인지. 칼을 쥐고 있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조금 까칠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그녀 나이로 보이곤 한다.
자기 입 근육이 삐었나 보다 싶으면서도 미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누가 꼭 그래야 한다고 정한 게 아닌데도, 손주를 가져본 적 없는 노부인이라도 어린 소녀를 보면 자연히 이런 감정이 심장에 고이는 걸까.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뿐인 것처럼, 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감과 숭고한 대상화 -본문
그녀의 삶이 연장될수록 누군가의 삶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떠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늘어나는 원망 하나씩이 축적되면서 ‘투우’와의 결투가 시작된다.
감정이 아닌 이성만으로 움직여야 하는 그녀의 일상이 하나의 사건으로 뒤틀리면서, 그것도 모두 투우가 작정하고 덤빈 것이겠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과연 그녀와 투우가 마주해야만 했을까? 가 의문이 들었다.
직접 실행한 것은 그녀였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한 방역 작업을 한 터였으니, 일단 그 사주를 하게 한, 그 누군가를 먼저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이 분량에는 없었지만 투우라면 이미 그, 혹은 그녀를 처치하고 마지막에 손톱인 그녀를 찾아온 것이었을까.
과연 이 꼬여버린 운명을 끈을 어디서부터 찾아 시작해야 할지. 언젠가는 과일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내 그 형체가 뭉개져 버린 파과와 같이. 그들의 삶도 인간의 것이 아닌 방역업자의 것으로만 남아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건 나 때문입니다. 내 눈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 눈으로 심장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본문
평이한 삶을 살기에는 시작부터, 과연 그 시작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잘못된 장소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왠지 모를 먹먹함이 밀려든다. 그들의 인생은 과연 파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