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친구와 함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들렀던 날, 제목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든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라는 책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내게 친구는 ‘이 책 좋으니 한 번 읽어봐.’ 라고 이야기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저렴한 가격도 한 몫을 했고 친구의 권유도 있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책을 사가지고 온 기억이 난다.
그리 오래 되진 않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그 책 속에 남아있는 잔상은 별로 많지 않은 와중에 벽돌을 쌓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기술자가 아니기에 그는 벽돌을 쌓는 동안 약간의 실수를 하게 된다. 이미 시멘트도 다 굳어졌기에 더 이상의 보수는 불가능한 상태에서 여전히 그는 잘못 놓인 2장의 벽돌 때문에 그간 쌓았던 벽돌을 무너트리고 다시 쌓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게 2장의 벽돌 때문에 노심초사 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 한 사람이 벽돌이 너무 아름답다며 칭찬을 하게 된다. 문제는 잘못 놓인 벽돌 2장이 아니라 그 벽돌 2장에만 집착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 읽었던 이 내용이 다시 이 책의 맨 뒷부분에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로 만나본 지난 과거가 있기에 그의 슬프고 웃긴 사진관은 그 어디에도 사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가 느꼈던 순간순간을 글로 남겨 놓고 있었다. 사진관이면 당연히 사진이 있어야지! 라는 나의 단순한 논리를 깨트리고 그에게 남아 있는 잔상들을 글로 담아 놓고 있는데, 글 역시 사진과 같이 순간의 기억이 영원히 남는 것일 테니 이것 역시 훌륭한 사진관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살다 보면 매일 코미디를 보듯이 까르르 웃는 날들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네 삶은 언제나 달콤함 만이 아닌 짠맛, 신맛, 떫은 맛, 매운 맛 등 다양한 종류의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때론 그 누구보다도 미워하는 마음도 들곤 하는데, 머리 속으로는 이렇게 누군가를 미워해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 그러니 이 미움을 버리고 평정심을 되찾아 보자, 라고 되뇌곤 하지만 아마 이게 이렇게 쉽게 되었다면 종교로 귀의를 했지 이 곳에서 이렇게 오늘도 울그락 불그락 하고 있지는 않을 터이다.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벌을 주는 중간 매개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벌을 주는 게 아니고 놓아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업이 알아서 해결합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본문
현명하게 내 마음을 다스리고 상처로부터, 아픔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해서는 위의 방법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최선일 게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전에서는 쉬이 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 새 ‘화’가 나를 잠식하여 내가 사라져버리는 순간이 자주 나타나는 요즘, 그래서 누군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있고 원망해야 할 어떤 존재가 필요한 지금, 다음의 글을 읽으며 나의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몰고 올 뿐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겨 본다.
우리가 공산주의자 한 명을 죽이면 그들의 형제, 자매들이 또 공산주의에 들어가서 공산주의자가 됩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 두 명을, 세 명을 죽이면 또 그들의 형제, 자매들이 공산주의에 들어가서 또 두 명, 세 명이 공산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적이 늘어날 뿐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본문
어쩌면 우리는 아잔 브람이 말하는 사진관 속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을 이미 겪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라며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속의 울분을 벗어 던지지 못해서 또 다시 나를 아프게 하는 상처의 중앙으로 나를 내 몰아 힘들게 하는 것을 보면 끔찍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이거나 내 스스로 생채기를 내며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자 하는 고문관이 따로 없다.
삶은 결코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해야 한다’ 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본문
완벽해야만 해! 라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 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기에, 30만큼의 실수를 하는 우리의 삶은 다채로우며 매일 다른 빛깔을 내는 것이기에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실수를 바로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작은 위안이 된다.
쓰다 보니 왠지 모르게 무겁기만 한 책이 되었지만, 실상 읽어보면 훈훈한 내용들도 꽤나 많이 있다. 마약에 빠졌던 이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장면에서는 한 때는 지우고 싶은 죄악이 경험이 되어 아이들에게는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예방책이 되기도 하고 한 아들은 아빠의 시급을 전해주면서 한 시간만 함께 해 달라는 아이의 바람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귀중함도 깨닫게 되는.
마냥 무겁지만은 않으면서도 읽다 보면 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을 좀 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텅 비어 있는 듯이, 고요한 그를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바꾸어 보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끙끙 앓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반문해보게 된다. 내려놓음, 이 주문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좀 편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