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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다면 대체 나는 알베르 카뮈라는 작자가 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인지 이 작품이 도대체 왜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며 무덤덤하게 시작하는 소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제와 동일하게 오늘을 보내고 옛 동료를 만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웃는 그를 보면서 제정신인가, 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족속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고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본문
사실 이런 저런 책들의 도움을 얻어 어렵사리 읽어 내려간 이방인을 대하면서도 나는 쉬이 주인공을, 아니 주인공보다도 카뮈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오기 같은, 그 질기면서도 이왕이면 그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서 선택을 한 이 책을 마주하면서도 과연 이 책을 읽으면 그를 알고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역시 카뮈는 쉬이 그의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동정인지 연민인지 그도 아니면 호감인지 모를 무언가 이전보다는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친숙해진 느낌이랄까? 친해진 것은 아니지만 가까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이젠 그가 마냥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장애로 가득한 삶……. 그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우선 그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곧장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년이 되면서부터는 병에 걸려 여행의 꿈과 미래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었다. (중략)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겉으로는 전혀 그 병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동감 넘치게 활동하는 듯 하다가도 어느 덧 자리에 누워버렸으며, 자칫 쓰러질 뻔하다가도 또 금방 벌떡 일어나곤 했다.” –본문
그가 좋아했다는 열 개의 단어를 키워드로 하여 1부의 내용이 자리잡고 있다. 각 단어마다 그가 이야기 하고자 했던 내용들을 추려낸 것이었는데 솔직히 모든 키워드 안에 설명된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을 읽어봐도 겉도는 내용들도 있는 반면 아,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키워드 중 가장 먼저 읽어본 것은 어머니, 라는 단어의 내용이었는데 이방인에서 그토록 냉혈한으로 주인공을 그렸던 그에게 어머니란 어떠한 존재일까?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가 찔러도 피가 안 나올 만큼 매정한 이가 아니라 그의 환경이 그로 하여금 냉담자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 키워드 부분에서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만 알베르 카뮈를 작가로서 받아들 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키워드 속 어머니의 모습은 대체로 사근사근하다기 보다는 방목형의 어머니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 기이한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시작하는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도 그러하고 별다른 이야기 없이 독선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 장면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하나하나 모든 것을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도 간혹 등장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카뮈의 현실 속의 어머니와 그가 그리던 이상향의 어머니를 모두 조합해 놓은 부분이 아닌 가 싶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밖에는 불빛과 소음들. 여기는 어둠 속에 묻힘 침묵 뿐이다. –본문
2부에서는 카뮈의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금 만나 볼 수 있게 된다. 키워드를 통해 카뮈를 만나고 나서 다시 그의 작품들을 마주하면 이전보다는 생경하다는 느낌이 훨씬 사그라들긴 한다.
이방인 속 주인공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닌 오롯이 그로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는 세상에 이미 하나되어 벗어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 나의 눈에는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한 사람’ 으로만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즉,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중략)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본문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그의 인터뷰를 읽으며 조금씩 카뮈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게 된다. 무작정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어놓은 궤변론자 일 것만 같던 그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것을 집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가 더 젊었더라면 작가가 되지 않아도 행복했을 것이라는, 때론 교직에 몸을 담고 싶었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그가 적정한 때에 작가로 나서준 것이 이제서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도 쉬이 ‘나 이제 알베르 카뮈’에 대해 알아! 라고 당당히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이전보다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반감보다는 호감이 우선할 것 같다. 배경을 알게 되었기에 이전보다는 쉬이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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