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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 신화 속에서 건져올리는 삶의 지혜 50가지
송정림 지음 / 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신화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 마냥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지만은 왠지 모르게 신화, 하면 한 번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신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으면 지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일차원적인 바람이었고 그래서 신화를 읽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외우고 또 외웠었는데 그렇게 외운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홀연히 또 사라지고 그러면 다시 읽고 암기하고 하는 행태를 반복했었다. 얼마 전 이 책을 받아 들고서 나는 대체 내가 왜 신화에 대해서 이렇게 탐닉하고 가지려 하는 것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만 해도 제목과 표지에서 밀려드는 우아함에 동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이 얼마나 간드러지면서도 인간의 바람을 담은 표현일까. 신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한 평생을 산다면 어디서건 빛이 날 것만 같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수도 있을 뻔 했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신화를 읽고 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심심한 조언도 곁들이고 있다. 그저 신화 속에 빠져 그 안에서 허둥거리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우리네 모습을 발견하고 또 투영해서 보는 것. 그것이 신화를 읽고 탐하는 이유인 것이다.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결국 한 송이 수선화로 생을 마감했던 나르키소스. 나는 그를 보면서도 나르시시즘에 관한 기원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내 스스로도 나르키소스처럼 타인 혹은 나를 둘러싼 다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한 동일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를 제외한 그 모든 것들에 냉담한 모습은 나르키소스와 동일하다만 그 미모에 빠지는 것이 아니니 그저 자애심으로만 해석하고 나를 사랑해야 다른 누군가도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며 나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현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은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함께 보다는 혼자가 더 편한 나날들. 매번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싫어 홀연히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가서도 사람들과 최소한의 접촉만 하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또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며 현대의 나르키소스들에게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들려주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일도 후천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 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탄식한다. 사람들은 항상 사랑받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다. –P44~45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는 또 어떠한가. 길을 지나기 위해서는 통행세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나그네를 집으로 유인하고는 돈을 빼앗았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의 침대 길이에 맞춰 나그네의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을 경우 키를 늘이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갔다고 한다. 아마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끔찍한 괴물이구나, 정도를 느끼고 넘겼을 것이다. 자신의 침대를 기준으로 하여 타인을 바라보는 그 잔혹함 따위보다는 그저 살인이라는 행위의 잔혹함이 결국은 테세우스에 의해 제거됨으로써 그간 행했던 악행에 대해서 이렇게 벌을 받는 구나, 하는 당연한 이치에 그러니까 권선징악이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깨닫는 것도 어디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무한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임에도 이 안에서만 있어야 한다면 너무 안타깝고 아깝지 않은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용어는 마르크스의 논문 속에 쓰였다. 그는 헤겔의 관념론적 방법을 비꼬며 ‘프로크루스테의 침대’라고 비판했다. 관념의 기분을 세워놓고 현실을 제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는 것이다. 남을 인정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잣대에 따라 재단한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누구에게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숨겨져 있다. –P 91 페르세포네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는 지하 세계로 데려간 하데스의 만행으로 인해 계절이 생겼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한다. 이미 알고 있기에 안다, 라고 생각하는 동안 저자는 그럼 이렇게는 생각해 봤는가? 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 신화를 통해 다른 문학 작품과 연계해서 이끌어내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고. 신화라는 이야기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으로 접근했다가 그 안에서 현실과 연계해서 보는 법을 배운다. 이제 더 이상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 노력하지는 않을 것 같다. 타인에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내 스스로의 생각의 틀을 키우는 방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
야릇하고 오묘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 / 빌리 페르만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