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너무 어려워서 도통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니체를 모르고 살아왔던 나의 삶이 그다지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굳이 난해하다고 평정이 나있는 그를 알아보고자,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있어 보이는 홍보용의 선택이 아닌 과감히 비켜갈 수만 있다면 비켜가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내 생에 절대 들어올 일 없을 것만 같던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칼럼을 통해서 성큼 내 자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 중 그 어느 것보다 독보적이면서도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 당당히 말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몽매한 군중들에게 초인이 되어 니체 자신의 목소리를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주창하고 있다.
신은 죽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험에 빠지는 것처럼 차라투스트라 역시 이상한, 제 정신이 아닌 광기 어린 사람으로 치부하여 그 마을을 떠나기를 종용하게 된다.
니체의 저술의 목표는 위에 인용된 소크라테스의 목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니체와 소크라테스는 매우 독특한 사상가였으며, 그들 주위 사람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소크라테스는 일상을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면에 니체가 추상적이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것을 독자에게 툭 던지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독자의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기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갑자기 신이 죽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니체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그 동안은 나와 상관없는 그였다만 몇 십 페이지에 할당하는 칼럼을 보고나니 나는 그 칼럼을 독식하는 것에 모자라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과 그와 함께 읽으면 좋다는 해설서까지 총 3권을 안고서는 그 전에 니체의 전반적인 관념을 알아보고자 이 책을 마주하고 있었다.
니 체했니? 라는 농담조로 시작하는 서문은 진실로 뒤 이야기들이 녹록치 않음을 알려주는 개시와 같은 말이었다. 니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보고자 읽어 내려가는 동안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부분과 니체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고서 이 책을 마주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니체의 종잡을 수 없고 또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내용들이 수두룩하기에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해석에 난항을 겪었다는 그 부분을 과감히 포기하고서 문학 안에서의 니체로 한정하여 작품 안의 니체만을 바라보려 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개별적 인물이 자신을 아름답게 형성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이용했다. 그러한 개인은 도덕을 넘어서면서도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인물로서, 그것은 작품의 창조자로서 니체였다. –본문
문학으로만 포커스를 맞추어 바라보는 니체는 그 역시도 만만치가 않은 과정이었다. 이 모습이 진실인 듯 하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넘어가면 또 다른 모습의 니체가 문장 속에 녹아있기에 대체 어떻게 그의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지로 난항을 겪으며 페이지마다 지체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하마스가 니체의 문장들을 이해하고 풀어내는데 있어서 그 스스로가 하나의 논점을 가지고서 통일된 시작으로 마주보려 했다는 것이다.
작가를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나는 그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독자로부터의 무관심에서 벗어나 그를 알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원주의 원근법적인 접근이나 영겁회귀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100%는 아니겠지만 이해하려 이것 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들춰보기도 하며 꽤나 공을 들여 읽은 책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나 자신이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면서, 일어나는 자, 단련하는 자, 그리고 엄격하게 극기하는 자. 그것이 일찍이 자신에게 지금의 네가 되어라 라고 가르쳤다–본문
문학으로서 그의 삶을 판단해 보노라면 그는 그가 바라는 대로 영겁회귀를 누리고 있다. 그가 떠난 지는 오래 되었음에도 작품들을 통해 그는 계속 이 곳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니체, 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내게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이 책을 읽어봤으니 이제는 니체를 마주하는데 있어 장벽이 조금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소소한 위로와 함께 이제는 정말 니체를 만나러, 차라투스트라를 마주해 봐야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