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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공원이라는 제목의 선셋 파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한가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손 때 뭍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의자에 앉아 하루의 일과를 되짚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그게 내가 생각했던 선셋 파크였다면 소설 속의 선셋 파크는 겉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4명의 사람들이 자신 만의 상처 혹은 드러낼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안고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장소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선셋 파크. 고즈넉하기보다는 사람이 살지 않기에 생경하기까지 한 그 장소가 이 네 명의 은신처가 된다. 공동묘지를 마주하고 있는 선셋 파크는 마치 묘지 안의 잠들어 있는 이름 모를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묻혀진 듯 고요하니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점거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외딴 섬과 같은 곳은 네 남녀의 이야기를 품고 점차 생동감을 찾아가게 된다. 단지 그것이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하고서는 선셋 파크나 그곳을 점거한 그들 모두에게 산다는 것의 생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인공인 마일스를 처음 접했던 그 느낌 때문일까. 뭔가 낯설어서 다가가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바라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철거된 집이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들 사이에서 그 잔해들을 찍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마일스는 아마 자신도 그들과 같이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고 싶은 바람이기에 하릴없이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덩그러니 남겨진 쓰레기들은 이전에는 쓰레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의자나 시계나 탁자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 등. 모두 고유의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쓰레기라는 한 뭉텅이로 명명되게 된다.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마일스는 오늘도 그날의 사건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마치 자기는 자신이 한 일을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는 그녀가 얼마나 어린지 듣고 질겁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아들이 그 나이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만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의 삶은 중도에 멈추어 제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못했다. 겉보기에 다 자란 성인 남자일지라도 내적 자아는 열여덟 살과 열 아홉 살 어딘가쯤에 머물러 있다. –본문
그 날의 사고가 있었던 날, 마일스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이 사고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의 행적을 감추고 홀로 사라지는 것을 택한다. 서랍 깊숙한 곳에 물건들을 넣어두면 어느 샌가 흔적조차 사라지는 것들 마냥 마일스는 자기 자신이 이 세상 어디에선가 조용히 세상 속에 묻혀 버리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내가 마일스라고 해도 그 사건은 너무도 무서웠을 것이다. 말 다툼 끝에 몸싸움 보다는 약하지만 격렬했던 치근거림 속에 형 보비는 쓰러졌고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차가 보비를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형의 죽음. 마일스는 그 날을 되짚어 보며 자문하곤 한다.
‘과연 그 날 나는 그 차를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 형이 사라지길 바랐던 것일까?’
그 누구에게도 들어낼 수 없는 진실을 묻고서 마일스의 방황은 계속된다.
선셋 파크로 진입을 추진했던 빙, 그가 마일스와 그의 가족들로 하여금 유일하게 매개체가 된 사람이다. 마일스를 선셋 파크로 불러드린 것도 빙이었으며 마일스로 하여금 가족들에게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도 빙 덕분이다.
물론 빙 역시 선셋 파크로 들어오고 나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세간에 대한 믿음 보다는 그 세상에 편협해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던 빙은 그래서 더욱 열심히 드럼만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선셋 파크에 점점 익숙해 지는 동안 함께 살고 있는 엘런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녀 작품의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떠나버린 이후였지만 그런 아픔은 금새 사라지고 그의 진정한 삶의 롤 모델이자 멘토였던 마일스에 대한 마음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바로 그를 향한 오롯한 사랑을 느낀 것이다. 다른 이성이나 동성이 아닌 마일스를 향한 끝없는 갈망. 그것이 그를 오늘 빙과 마일스를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2천년 전 드넓게 펼쳐진 로마 제국의 변경 식민지에 살던 사람이 오늘날의 것과 완전히 똑같아 보이는 가재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의 정신이나 감정이나 내면이 현대인인 자신과 다를 이유가 뭐겠는가? –본문
무엇보다도 이 소설 속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바로 앨리스였다. 계속해서 자학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는 거울 앞에서면 영락없이 자신을 왜곡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점철된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뚱뚱한 여자로 매력 따위는 없는 여자로 자신을 치부한다. 몸무게가 줄어야만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앨리스. 다행히도 그녀는 펜 클럽에서의 혁명적인 일을 하게 되면서 점차 자기 자신을 못생기고 말도 안 된다고 믿는 몸뚱아리가 아닌 세상을 위해 자신의 소리를 내지를 수 있도록 선셋 파크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제 자기 몸이 스스로도 혐오스러워졌고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 뚱뚱해, 그녀는 제이크에게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또 했다. 나는 뚱뚱해, 뚱뚱해.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기가 보아도 자기 몸이 혐오스러울 정도라면 옷을 벗고 함께 침대에 들 때 그가 어떤 기분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본문
어린 시절 그러니까 엘런이 19살인 당시에 그녀는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돌봐주고 있던 15살짜리 소년의 아이를 갖게 된다.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렇다고 아이의 아빠인 15살 소년에게도, 그 소년의 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 수 없던 엘런은 혼자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선택에 아이를 지우고 그 일은 더 이상 드러내는 일 없이 조용히 묻고 살아간다. 그래서 일까. 그녀는 화가로서도 더 이상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매일 그리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바라봐주거나 알아주지 않는 작품들을 보며 그녀 스스로 이 투명한 철조망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느 날,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과거의 남자였던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그녀는 드디어 그녀만의 영롱한 빛을 띠게 된다.
그는 엘런이 해놓은 작업에 감동했고, 그 작업이 얼마나 거짓 없고 강력한가에 대해 쉬이 않고 떠들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데생을 해왔어도 이런 얘기를 그녀에게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본문
무단으로 선셋 파크를 점거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 경찰에 의해 강제로 흩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들의 흔적들을 체 치울 수도 없이 허둥지둥 나오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안도를 하게 되었다. 앨리스의 논문과 빙의 드럼, 엘런의 스케치를 그 곳에 고스란히 남겨 두었지만, 그들은 이미 그것들이 없어도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유적과도 같은 흔적을 매달고 난 이렇게 살아왔어요, 나를 돌봐 주세요 라는 값싼 동정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두 발로 혼자 설 수 있도록 선셋 파크의 터널을 지나온 것이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본문
의도치 않게 또 다시 사건에 연루된 마일스. 그는 이제 더 이상 숨으려 하지 않는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미 그는 충분히 숨는 연습을 하고 그 동안 자신을 향해 있던 수 많은 물음표들을 외면하고만 있었다. 지금 또 다시 숨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를 일이다.
더 이상 열 여덟 소년이 아닌 어른이 된 마일스는 더 이상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다. 과거로의 시점에만 존재했던 마일스는 선셋 파크에 묻혀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딱 하나의 결말을 정해두고 끝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어디로든 그 네 남녀는 앞으로만 나아가면 될 테니, 그들의 당당한 발걸음을 그려보면 나도 모르게 싱긋 웃음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