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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외토픽이나 인터넷 뉴스상의 정말 이런 일이 있단 말이야?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뉴스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아마 이 소설 속의 ‘형’ 이 바로 그 뉴스 속의 인물일 것이다. 630kg 정도의 몸무게가 나가는 형. 형은 20년째 침대에서만 살고 있다. 그런 형을 기점으로 하여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와 가족들과 그리고 그 형제의 중심에 서있던 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언젠가 너무 비대해진 몸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벽을 뚫어 침대에 있는 환자를 구조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표준 체중으로도 치를 떨며 살을 빼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와는 대비되는 기사를 보면서, 대체 왜? 라는 질문만 되뇌고 있었다.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사는 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자신의 몸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먹으며 하루하루 불어나는 자신을 보면 자괴감이 들어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을 것만 같은데, 왜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놓아버리려는 것인지, 그 모습에 안타까움을 넘은 책망이 더 깊어졌다.
침대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행태 아닌가?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그런 자신을 간호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게 될 터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될 텐데 왜 그들은 이러한 사태를 간과하고만 있을까?
나는 왜 그들은 스스로를 침대에 속박시킬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주변인들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에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질문들에 대한 명쾌하진 못하더라고 가늠할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무조건 적으로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그들을 헤아려보려는 시도를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하였고 결과는 확연하게 그랬구나! 라며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흑백논리를 벗어나 어느 정도의 타협점에 도달 한 듯 하다.
형이 죽어야만 가족들에게 평화가 찾아올 것이며 형 때문에 그 침대를 벗어날 수도 없이 맴돌 수 밖에 없는 운명 속의 주인공은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언제부터 그는 형에 대한 분노가 이토록 깊어졌을까? 자신이 한 눈에 반한 루가 자신이 아닌 형을 선택하게 되면서부터? 아니면 도통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대에서 칩거하는 형을 보면서 모든 것을 방관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루의 희생을 모르는 듯 하고 있을 때부터였을까?
가슴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나는 온 힘을 허벅지에 모아 발걸이에 걸쳐진 두 다리를 흔들어 맞부딪쳤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90센티미터의 간격은 평생이 걸려도 건널 수 없는 협곡이었다. 나는 형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형을 할퀴고 물어뜯고 걷어차고 싶었다. –본문
하지만 결론적으로 형은 자신이 침대에서만의 생활을 고집한 덕분에 가족들에게 있어 각자의 역할을 배당해 준 것이라고 주창하고 있다. 어머니에게는 그 헌신적인 사랑을 쏟을 대상이 되었으며, 아버지에게는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동생인 주인공에게로 하여금 그가 사랑하는 여자인 루를 돌려주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누군가를 이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있게 한거야. “
“그럼 아버지는?”
“직접 봐.”
나는 기중기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환희가 넘친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버지에겐 새로운 사진을 드렸군.”
“그리고 너에게는 루를 줬어.”
나는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한다.
“어, 언제…..?”
“지금.”
“그럼 형은?”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지 생각해 봐. 평범했겠지. 그런데 지금 주변을 둘러봐. 내 사진 속에는 네가 있어.” –본문
형인 멜컴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은 평범하게 돌아갈 것이란 것을 알고 매일을 바둥거리며 쳇 바퀴처럼 사느니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결과적으로는 목적 없는 하루를 살며 의미 없는 하루를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의 여자친구였던 루가, 아이를 낳고 싶어 라고 고백한 그 날밤 이후 멜컴은 180도 변하게 된다. 속박되어 있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살고자 했던 그는 바닷가에서의 하루를 보낸 이후 다시는 그의 발로 걸어나가는 일 없이 침대에서 무위도식하고 있다.
하기야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르긴 했다. 사회 통념상의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옷이라는 자신을 감추는 것들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세상에 투영한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어 자기 만의 세상에서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살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회라는 굴레에 나사처럼 딱 맞아 돌아가기 원하는 이 세상과 계속되어 빚어지는 마찰에 의해 쉬이 행동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 속에 타협하여 조용한 나사가 되느니 오롯이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침대를 고집하게 된 것이다.
“난 의자에 앉아서 일해. 컴퓨터 게임을 통해 누군가와 싸우고. 투표를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버는 돈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살 수도 없지. 난 목적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만들어 주는 일만 하고 있어.”- 본문
평범하게 살고 싶다, 라는 바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갈수록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수 많은 이들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을 소망처럼 이야기 하는 것일 게다. 자식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은 어느 순간 아들을 점점 세상과 단절시키게 되어버리고 그렇게 변화되는 일상 속에서 아버지는 다락방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를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삶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어느 새 그 어느 가족보다도 특이하고 비밀스러운 가족이 되어버렸으며 그렇기에 지금 나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일 게다.
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크고, 뚱뚱하고, 둥글둥글하고, 무겁게 변해 갔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은 그런 형 곁에서 개미처럼 일하고, 먹고, 자면서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 갔다. 가장 이상한 점은 우리 모두 그런 현실이 정상인 양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본문
가족간의 사랑이라고 칭하기에 그들의 화살표는 무던히도 일방적으로만 향해 있다. 가족이라면 원래 그래, 되돌려 받는 것이 없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줄 수 있는 거지, 라지만 멜컴이라는 태양을 공전하듯 가족들은 일정 궤도 안에서 말 없이 그 주위를 돌고 일방적인 사랑의 행태로 인해 점점 더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스스로의 발목을 저당 잡히고 있으니 말이다.
타인의 삶의 목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철저히 자신의 침대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멜컴과 그와 함께 모두 한 배를 타게 된 가족의 이야기. 그들 스스로는 20여년 동안의 세월 동안 행복했을까? 침대를 벗어나서도 서로에게 삶의 목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과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에 있어 모든 가족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재정립을 일깨웠다는 것으로서 멜컴의 프로젝트가 결론적으로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삶이 다른 곳에서는 재연되지 않았으면 한다. 타인을 위한 삶의 목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의 목적을 안고 그 안에서 서로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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