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미술관 예술산책 - 크리에이티브 여행가를 위한
명로진 지음, 이경국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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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 그 곳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에 대해 찾아보던 시절에도 가 볼만한 장소 즉 관광지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주쿠나 시부야, 긴자, 도쿄타워 등 쇼핑할 수 있는 거리나 맛집이 분포되어 있는 곳을 주로 생각하고 숙소를 어디로 잡을까? 와 숙소 근처에는 볼거리가 없나? 이 정도에 대한 생각에만 도쿄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을 했다. 만약 도쿄가 아닌 유럽이었다면 그 코스에 반드시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지금 이 곳에 살면서도 서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미술관도 일년에 한 두 번 가볼까 하는 판국에 도쿄까지 가서 미술관을 방문한다? 아마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꿈에도 생각지 않을, 내 인생에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일게다.

 여행을 가서 미술관을 가다니, 그것도 도쿄에서. 대체 왜? 라는 생각과 대체 도쿄에도 미술관이 많이 있었단 말인가? 하는 정도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접근하던 이 책을 보면서 또 한번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정말 편협하기 그지 없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박물관 화집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시냐크의 그림뿐 아니라 다른 화가의 작품도 마찬가지, 원하를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이 1%도 전해지지 않았다. 미술 작품이란 화가가 그린 바로 그 작품을 봐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서양미술관에서 깨달은 것이다. 오리지널을 직접 보는 것과 시진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원빈을 직접 만나서 껴안는 것과 브로마이드로 보는 것의 차이만큼이다. -본문

 별 생각 없이, 솔직하게 말하면 도쿄의 미술관들에 대해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쳐보면서 점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책으로만 이 미술관들을 만나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마저 밀려들어 아, 기회가 되면 이 미술관들을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얼마 전 미술관에 가서 관람을 한 후 기념품을 판매하는 코너에서 오늘 관람한 작품들에 대한 두툼한 도록을 다시 한 번 슬쩍 들춰보게 되었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만큼 하나하나 작품의 자세한 설명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내가 실제로 본 그림들이 책 안에 담기는 순간 작품이 아닌 하나의 그림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눈 앞에서 보였던 붓 터치며 알 수 없는 그 오묘한 느낌과 감동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리고는 그저 한 장의 이미지로만 전락한 것을 보고는 실망감에 그 도록을 사지 않고 그냥 나와버렸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느낌이 아마 저자가 화집을 사와서 보고 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미술관들이 도쿄에 가득 있었다니.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통해서만 그 공간을 탐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크리에이티브한 여행을 모티브로 한 저자의 바람 덕분인지 미술관이 하나 같이 색다른 도전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국립중앙 박물관은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에 '이곳은 별 다른 게 없구나' 라며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일본의 사진기술과 채색판화의 절정이라고 일컫는 우키요에를 보고 나서 아, 이 고전적으로만 보이는 미술관에서 조차 이러한 뜻밖의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금 빠르게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도쿄 12]를 보기 전에는 우키요에가 뭔지도 몰랐다. 무식이 자랑이 아니지만 고흐가 우키요에를 베꼈다는 것도 몰랐다. -본문

 이 글을 읽고 나서야 고흐의 확연하게 들어나는 색채들과 우키요에가 비슷했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며 인상파였던 고흐가 우키요예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예술 역시 동서양의 경계 없이 어느 곳으로든 퍼져나갈 수 있다는 그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보고 싶은 미술관을 꼽으라면 미타카 숲 지브리 미술관과 국립서양미술관이었다. 국립서양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서는 최고를 맛보았을 때 멈춰야 한다며 다음 일정으로 잡혀 있던 미술관 관람을 자진하여 포기하고 그 날의 일정을 마치는 저자를 보면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만 가면 그 곳에서 고흐와 로댕의 작품을 실제로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이 미술관은 양과 질의 모든 면에서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중략) 이곳엔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부터 인상파, 입체파를 거쳐 잭슨 폴록의 추상화까지 5천여 점의 예술품이 숨 쉬고 있다. -본문

 미타카 숲 지브리 미술관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팬이라면 꼭 한번 가 볼만한 곳이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고스란히 현재에 담아 놓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토토로가 나타날 것만 같은, 자연과 현대의 공간이 함께 어울어져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으로 입장하는 순간 내 나이의 태엽을 누군가 자동으로 거꾸로 돌려만 줄 것 같다.

 어른인 나와 경국씨가 가도 너무너무 재미있는 곳이어서 숨박꼭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중략)

 '미아가 됩시다, 다 함께! 이것이 미타카 숲 지브리 미술관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본문

 도쿄에도 미술관이 있다! 를 넘어 도쿄의 미술관은 이런 매력도 있다, 알게 된다면 스스로 걸어오게 될 것이다, 라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기야 몰랐으면 몰라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으니 도쿄에서 미술관을 탐하게 될 줄이야.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듯이 이 책은 나의 도쿄 여행 스케줄을 모조리 바꾸게 하는 구나. 미술관과 친하지도 않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책! 언젠가는 이 책이 아니라 실제 나의 눈으로 그곳을 마주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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