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조그마한 카페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커피 한잔을 하는 도중에 책장에 있는 장 자끄 상뻬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머리를 식힐 겸 차나 한 잔 마시며 여유로움을 즐겨볼 겸 해서 들렀던 차라, 두꺼운 책들 보다는 가벼운 그 책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는데 매 페이지마다 가득한 그림과 더불어 길지 않은 문장들 덕분에 20~30분 남짓 동안 쉬이 읽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카페 정모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라는 책이 참 괜찮아, 라고 말했던 지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짧지만 그 여운이 강한 이야기. 그 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장 자끄 상뻬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언뜻 보면 그림을 참 대충 그린 것 같다. 힘을 빼고 흘리듯이 그린 그림처럼 보이긴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디테일이 참 잘 묘사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면서 볼 때마다 숨은 그림 찾기는 하는 듯한 묘한 매력에 자꾸 읽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따뷔랭은 자전거 수리계의 최고 장인이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은 자전거라는 단어 대신 따뷔랭이라고 부르게 된다.

갖은 삐걱거림, 온갖 새는 소리들, 가장 고치기 까다로운 고장들, 매우 세심한 손질 등, 라울 따뷔랭의 실력에 대해서는 흠을 잡으려야 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이 지역에서는 이제 자전거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따뷔랭이라는 말로 대신하게 되었다. –본문

그가 사는 마을에는 사물의 이름, 즉 대명사 대신 장인의 이름을 대신하여 부르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안경대신 비파이유’, ‘대신 프로냐르, ‘ 마지막으로 따뷔랭과 비슷하게 닮은 듯한 피구뉴사진을 대신하여 불린다.

어떤 한 분야에 장인이 되어 대명사보다도 더 확실하게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그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따뷔랭에게는 말 못한 평생토록 말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 아니, 말하고자 했으나 그 누구도 그의 진심을 제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고 그저 농담이려니, 하고 넘기게 된다.

무의식과 오만, 영웅 심리가 밑바탕에 깔린 이 영광이 기술자 양반에게는 영 거북했기 때문이다. 따뷔랭은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다. 물론 모욕감 때문이었지만 진실을 털어놓을까봐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애교가 지나쳐 허풍이라고까지 생각할 것이었고, 뭐니 뭐니 해도 피구뉴와 마들렌, 나아가 생 세롱의 신용까지도 손상될 것이 뻔했다. 따뷔랭은 속으로 이 모든 것이 다 사기라고 반복해 말했다. –본문

따뷔랭을 보며 베토벤이 문득 떠올랐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놓고도 들을 수 없는 그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이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체념하며 그 상태를 받아들였을지, 아니면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손이 닿는 대로 영감에 따라 한 줄 한 줄 오선지를 채워 넣었을지.

어찌 보면 따뷔랭은 자신의 노력 하에 달라질 수도 있는 현실이기에 자책감이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던 여자에게 자신의 진심 어린 고백은 빗나간 타이밍으로 인해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항상 웃기는 사람으로 평정 나 있던 따뷔랭에게 있어 진지함을 가진 그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을 용인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우리들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도 가슴이 있으며 이 가슴에는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혼이 때로는 남과 함께 나누고픈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말하고 싶어지는, 과하게 낭만적인 사람들이 자주 겪는 유혹을 따뷔랭도 느끼곤 했다. –본문

언제나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든다. 타인을 안다, 라며 나는 누군가의 진심을 듣기 보다는 내가 먼저 판단하고 독단적으로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겠지, 라고 판단하고 그 곳에 덩그러니 놓아둔 것은 아닌지. 오늘만큼은 그 누구의 이야기라도 차분히 들으려 노력해봐야겠다. 따뷔랭처럼 웃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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