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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천국의 몰락
리처드 던컨 지음, 김석중 외 옮김 / 인카운터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신용? 하면 신용카드만 떠올릴 만큼이나 경제에 대한 무지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대체 신용천국의 몰락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아리송해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초반에만 해도 신용의 급 확장이 발생했다, 라는 말을 읽으면서 대체 무슨 신용이 늘었다는 거야 하며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다.
유통되고 있는 화폐가치는 더 이상 내재가치를 지닌 실물 자산으로 평가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달러는 상품 화폐가 아니어싿. ‘법정 불환지폐’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직 정부가 이를 돈이라고 명명한 이유만으로 화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종류의 화폐를 얼마나 찍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제가 없었다.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불태환 화폐의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본문
금태환제도. 금을 화폐와 같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이전의 체제로서 금 지급준비 삭제법이 발효됨에 따라 더 이상 달러를 발행하는데 있어서 일정 금액의 금을 보유해야 하는 법적인 제재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학부 시절에 들었던 내용들이라, 그래 한 번쯤 들어 알고는 있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신용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라는 물음만이 가득해지는 순간, 하단의 표를 통해서 신용의 천국이 되었다는 말이 이해되었으며 신용의 갑작스런 확장과 이로 인해서 각국에서 발생되는 인플레이션은 물론, 화폐의 유동성에서부터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발단에서부터 양적완화 사태까지, 하나의 매듭이 풀어지는 것만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그 기분이란. 아마도 안경 없이는 한치도 볼 수 없어 답답한 통에 눈에 꼭 맞는 안경을 만난 느낌이랄까? 여하튼 이 하나의 표를 이해하고 나서부터 책을 쉼 없이 읽어 내려갔다.
위의 이 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은 뒤 그 돈을 다시 거래 은행에 예금을 하고 예금 받은 은행은 그 돈을 다시 대출해주고 그 대출금이 다시 다른 은행으로 예금되는, 계속 대출과 예금의 꼬리물기가 되면서 처음의 원금 100달러가 신용을 업고서 500달러의 예금과 400달러의 대출이라는 신용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단지 원금 100달라를 가지고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하여 미국의 모기지론이 어떻게 덩어리가 커지게 되었는지가 이해된다. 대표적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이라는 두 회사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회사들은 채권 발행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정부 보증기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정부가 신용을 인증한다는 암묵적인 동의로 인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신용을 주고 돈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조성된 자금으로 모기지를 매입하고 다시 되파는 형태로 하여 이 회사들은 점차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패니매, 프레디맥, 그리고 ABS 발행자들은 그들이 빌린 그 많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한 것일까? 그들은 그 돈을 모기지나 소비자 신용의 형태로 가계 부문에 빌려주었다. 1982년부터 2007년 사이에 가계 부문의 모기지 부채는 10배나 증가하여 10조 5,000억 달러에 이르렀고, 소비자 신용은 같은 기간 6배 증가하여 2조 5,000억 달러에 달했다. –본문
신용이 증가함에 따라 화폐의 유동성은 증가하게 된다. 시중에 돈은 돌고 도는 것이지만 위의 표에서와 같이 작은 종자돈이 신용이라는 마법을 통해 엄청난 규모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용의 확대로 인해 물가는 상승하게 되고 자연스레 부동산 가격 역시 오르게 된다. 이전에 1억이었던 집이 있었다면 신용의 증가로 인해 1억 5천이 되고, 자산의 상승으로 그들은 이 상승된 자산만큼이나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고 그 대출금이 다시 시중에 돌게 되고. 계속적으로 신용에 신용이 더해져 더 크게 부풀리게 되면서 급기야 거품과도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자산이 커지게 된다.
급속한 신용의 확장이 어떻게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용이 확장될 때에는 소비자들이 더 많이 빌리고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으며 투자자들 역시 더 많이 차입하고 투자할 수 있다. 소비와 투자의 증가는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과 이윤을 증가시킨다. 나아가 신용의 확장은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격 상승을 초래하여 일반 대중의 순자산가치를 증가시킨다. 자산 가격 상승은 그 소유자의 부의 상승을 의미하며, 담보 가치가 증가하여 또 다시 대출의 증가로 이어진다. –본문
이렇듯 신용이 확장은 단지 개인에게만 국한되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및 그 개인들이 구성되어 있는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제 통용화폐인 달러의 팽창은 타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바, 미국이 중국에게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과거에는 한 나라의 경상수지가 적자일 경우, 그 나라의 통화는 다른 통화에 대해 절하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수출 가격을 낮출 것이고, 다른 나라의 수입 가격을 인상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조정 메커니즘이 해당 국가의 국제수지를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본문
미국 대 중국의 수출은 변함없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그에 따라 수 많은 달러가 중국으로 회수되고 있으나 중국의 중앙은행의 고정환율로 인해서 위안화는 변동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위의 메커니즘에 따라 환율로 인해 국제수지가 회복되어야 하지만 중국 당국의 환율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경상수지만 악화되고 있으며 또한 경제 회복을 위해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해야만 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하는 선택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동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찾아온 경제 위기 속에서 양적 완화 정책이 펼쳐지게 되던 현재까지, 미국의 현황은 물론이고 만약 미국의 경제가 무너지게 된다면 까지의 모든 시나리오를 만나볼 수 있다.
다만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라, 미국은 이 모든 사태의 피해자다, 라는 시선은 눈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고 명확하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제에 대해 쉽게 눈에 들어오니 이 정도의 앙탈은 눈감고 넘어가 줄만 하다. 경제 신문을 보면서도 이게 무슨 말이지, 대체 뭐라는 거야, 라고 한 번이라도 느꼈던 사람들이라면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읽고 나면 아, 이거였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니 말이다.